금융권, PF 단물만 먹고 리스크는 건설사에 전가

정부도 주택산업을 규제 대상 인식 저효율 불러

워크아웃(Workout).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작업을 일컫는 단어다. 국내에 워크아웃이란 단어가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부터다.

재무구조개선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다. 금융권의 부채상환 유예, 협조융자, 출자전환 등을 포괄하지만 여기에는 기업 스스로 자산을 매각하고 인력을 감축하고 경영진이 사재까지 출연하는 등 기업의 노력이 전제된다.

지난달 25일 금융권이 발표한 건설업 신용위험평가 결과 9개 기업이 C등급을 받고 사실상 퇴출대상인 D등급을 받은 업체도 7곳에 달한다.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상위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 치고는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적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워크아웃 대상이지만 그룹 계열사는 가능한 한 제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비록 C, D등급은 면했지만 일부 대형건설사를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B를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B등급 자체가 단기 유동성 부족 판정이기 때문에 언제든 시장상황이 악화되면 이들 업체들이 C, D등급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신용위험 평가 과정에서 모든 부실의 원인과 책임을 오직 건설사에게만 몰아버리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물론 경영부실의 1차책임이 해당 건설사에 있다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사업 추진이 부실을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같은 부실의 책임에서 고수익을 노린 금융권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수익성 분석은 뒷전인 채 사업의 리스크는 고스란히 사업시행자와 시공사에 떠넘기고 앉아서 높은 PF 대출이자 수익을 누려온 관행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번 건설사 구조조정에는 여전히 아쉬움과 부족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명단 발표 여부를 둘러싼 혼선은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시장이나 전반적인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됐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워크아웃이나 퇴출로 받는 고통은 해당 건설사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건설시장의 수직적 하청구조 하에서는 자칫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방치할 경우 상당수 전문건설업체들은 더 큰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협력업체나 지역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심도 있는 보완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구조조정 역시 단순히 부실 업체를 추려내는 단기 처방에 그쳐선 안된다. 단순히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 몇 개를 퇴출시키는 것만으로는 달라질 것이 없다.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 같은 단편적인 조정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개별 건설사 역시 사업방식과 경영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언제든 또다시 구조조정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최근 주택경기 침체로 다소 비율이 낮아지긴 했지만 중견은 물론 대형 건설사조차도 주택 위주의 취약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심지어 일부 대형 업체조차 수조원의 매출중 주택건설사업 비중이 40%를 넘는 곳도 있다.

시장은 물론 정책 등 외부적 요인에 따라 급변하는 주택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긴 이 같은 천수답식 사업 구조를 바꾸지 않는한 달라질 것은 없다.

건설, 특히 주택산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 심지어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 조차 산업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규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주택사업 등에 따른 인허가 절차의 복잡함, 까다로움은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가져오고, 이는 건설산업 저효율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건설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구조 개혁이 없는 한, 정부와 금융권의 건설업 구조조정은 단순한 ‘건설업체 수(數) 조정’에 불과할 뿐이다. 건설업 구조조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정두환 서울경제신문 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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