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착공한지 2년5개월 만에 개통되었다.

올해는 그로부터 꼭 40주년이 된다. 지금이야 다 기억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고속도로 노선이 국토를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제대로 된 간선도로망이 부실하고 도로포장율도 2.48% 그친 당시에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는 지난 40년 동안 국토의 대동맥으로서 우리나라 경제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해 왔다.

협력과 희생정신의 산물
경부고속도로 착공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142달러, 전국의 자동차 대수는 5만대를 넘지 않는 후진국이었다. 당연히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이 부족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투입되는 공사비는 429억7300만원으로 당시 정부예산의 23.6%에 해당하는 우리민족의 역사 이래 가장 큰 공사였다. 투자의 우선순위, 타당성과 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그 외에도 환경파괴 우려, 영남권에 대한 특혜 시비, 수도권 집중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판에 여론의 반대마저 거세었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힘은 최고정치지도자의 리더십, 탁월한 관료, 기업과 근로자, 군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한데 어우러진 집합적인 에너지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과 리더십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아도 참으로 대단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건설 등 건설업체들은 시공경험과 기술력도 부족한 형편에 사실상 이윤도 없는 공사에 참여했다. 현장 근로자들은 77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만약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관계되었던 주체들이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면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가중대사에 있어서 국민과 기업과 나라가 함께 협력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감동어린 역사의 한 장면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교훈
경부고속도로는 개통 이후 우리나라의 성장을 뒷받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경제발전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1970년대 들어 급속히 팽창하는 물류 이동을 가능하게 한 대동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경부고속도로를 계기로 건설, 자동차, 철강 등 중화학공업이 발전했다. 또 종전에 도로를 이용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적어도 15시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5시간이면 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동시간 단축은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가지는 의미 중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경부고속도로를 기본 축으로 해서 호남선, 남해선, 영동선 등 국토의 종횡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건설될 수 있었다. 지역과 지역 간에 사람과 정보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균형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2010년 7월 7일’을 ‘1968년 7월 7일’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성장을 이루었다.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교통인프라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물적 여건은 크게 달라졌지만 뭔가 아쉬운 것이 있다. 살기 좋아졌기 때문일까,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문화가 옅어지고 있다.

공동체적 가치를 절대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최소한의 양식은 존재해야 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40주년을 맞아 물적 측면의 기여보다 오히려 정신적 측면의 의미가 더 다가온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