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특히 자신이 못 이룬 소망을 제자들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의 열정은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세계적인 주류회사인 디아지오 코리아는 최근 사용자제작 콘텐츠(UCC) 응모 등 공개오디션을 통해 원대한 꿈에 도전하는 5명을 선정, 앞으로 2년간 1인당 킵워킹펀드(KEEP WALKING FUND) 1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 이들 가운데 ‘팀 피닉스 복싱팀’의 박현성 감독(42)의 인생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파란만장하다.

박 관장은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복싱 금메달을 목표로 제자들과 땀 흘리는 ‘팀 피닉스의 꿈’으로 응모했다. 팀 피닉스 복싱팀은 국내 최초의 아마추어 복싱팀이다. 여자복싱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팀 피닉스는 7월 19일부터 23일까지 충북 청주에서 열리는 2010 세계여자복싱선수권대회 겸 광저우 아시안게임 파견 여자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맹훈련 중이다.

이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오는 9월 남미의 바베이도스에서 열리는 세계대회뿐 아니라 2010년 11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할 수 있기 때문에 팀 피닉스로서는 절체절명의 기회인 것이다. 팀 피닉스는 박주영(27ㆍ라이트급), 소민경(25ㆍ라이트플라이급), 이혜미선수(20ㆍ라이트급) 등을 출전시킨다.

박 선수는 행정고시 보호감찰직 시험을 준비하다 지난해 입단, 글로브와 함께 책을 놓지 않는 학구파 복서이다. 왼손잡이 소 선수는 2009년 전국체전에서 우승할 만큼 주먹이 매섭다. 이 선수는 지난해 전국여자복싱선수권자이며 2010년 아시아복싱 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아깝게 준우승했다. 이들은 세계선수권대회의 벽을 넘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사각 링을 향해 무더위도 잊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박현성 감독이 링 위에서 런던올림픽을 향한 팀 피닉스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운의 복서 박현성 감독의 별난 인생
국내최초 아마추어 여자복싱팀 이끌어
세계대회,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도전
복싱ㆍ격투기 융합, 권도(拳道)도 창안

필자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21세기 복싱권도본관’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복싱과 격투기 선수들 사이에 ‘피닉스(불사조)’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복싱인생과 꿈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충남 장항 태생인 박 감독은 중학교 때부터 복싱을 시작했다.

전국체전을 비롯한 굵직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7년 서울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했다. 1987년 태국 킹스컵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8년 프로로 전향해서는 5전 전승 4KO의 화려한 전적도 쌓았다.

그러나 한창 이름을 날리던 1993년 한쪽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얼마 뒤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3%의 전신화상까지 입었다. 모든 게 끝이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아 다시 일어섰다.

1997년 복싱도장을 차리고 후배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2003년에는 종합격투기 선수로도 뛰었다. 길러낸 제자만 해도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범의 실제 모델인 서 철 선수와 한국판 ‘밀리언달러 베이비’로 불리는 여자복서 민현미 선수 등 150여명에 달한다. 복서에서 2종 격투기선수가 된 최용수, 지인진 선수도 그의 지도를 받았다.

박 감독은 2006년 격투기와 권투를 융통성 있게 배합한 권도(拳道)를 창안, 사단법인 대한권도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브라질 유술이 정통 유도에서 파생됐듯이 복싱을 모태로 한 권도는 K-1 처럼 입식타격과 종합타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박 관장은 “여자복싱은 전통의 강호인 유럽,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북한도 강세지만, 제자 가운데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제패하는 그랜드슬램 복서가 나올 것이라 믿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비운의 복서인 그의 가슴 속에 맺힌 한이 시원하게 풀릴 날을 기대해본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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