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시겠습니다’ ‘님’ 등 극존칭 위해 무심결에 남발
되레 상대방 비꼬는 말로 전달돼 ‘천냥빚’ 얻을 수도

“다음에는 ○○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남은 거리는 150m이십니다”

앞의 말은 기념식장 같은 행사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보통 사회자가 축사할 분을 높이 부르는 말이다. 뒷말은 골프장에서 많이 듣는다. 캐디가 라운딩하는 골퍼에게 그린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줄 때 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왠지 어색하게 들린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글이 이상하게 쓰이는 현장이다. 주로 높임말이 오용․남용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높임말의 쓰임새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극존칭을 쓰려고 하는 말이라는 것은 짐작하겠지만 국적 불명의 말들이 귀에 거슬린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말을 쓰는 이들의 교육수준이나 종업원들을 고용한 기업들의 수준에 의문이 간다. 아무 곳에나 높임을 뜻하는 ‘시’자를 넣다보니 생긴 일이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비꼬는 투가 돼버린다.

“다음에는 ○○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에서 주어는 ‘말씀’이다. 원래는 말을 할 사람을 높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의 축하 말씀이 있겠습니다”가 자연스럽다. “○○가 축하 말씀을 하시겠다”도 듣기에 좋다.

“회원님, 남은 거리는 150m 이십니다”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골퍼’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을 높여 부르지 않고 거리에 존칭을 사용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중 높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법이 맞지 않고 듣는 사람도 자신을 높여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필드에서 캐디에게 저런 말을 듣는 순간 필자 같은 경우는 불쾌함을 느낀다.

그래서 종종 캐디에게 쓴 소리(사실은 바른 소리)를 하기도 한다. “회원님, 남은 거리는 150m입니다”로 말하라고. 캐디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기에 잔소리를 한다.

명사 뒤에 ‘님’자를 붙이면 상대를 높이는 뜻이 되는데 이것도 잘못 쓰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모자란 처녀가 시집가서 시아버지 머리에 검불이 붙어 있는 걸 보고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습니다”라고 하는 식의 황당한 높임말을 쓰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

우리글의 높임말이 잘못 쓰이는 것도 문제지만 공공장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쓰이는 우리글도 큰 문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것이어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데도 말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지하철 승강장에 지하철 도착을 알려주고 각종 정보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광판에서 그 날의 날씨를 설명하고 있었는데 ‘박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박무’라는 것을 해석해 뒀는지 이리저리 살펴봤으나 찾아 볼 수 없었다.

과연 몇 명이나 ‘박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 주변의 몇몇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모른다며 ‘순수 우리말’이냐고 되물었다. 지하철 안내판의 ‘박무’는 ‘薄霧’의 한자음이다. ‘엷게 낀 안개’란 뜻을 가진 말이다. 결국 오늘 날씨는 안개가 엷게 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엷은 안개’라고 적으면 될 것을 굳이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게 ‘박무’라고 했는지 지하철공사의 의도가 궁금하다. 아예 한자를 옆에 같이 표기하든지. 지하철공사 직원들의 한자 수준이 엄청나서 일반인들도 이 정도면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슬아슬한 승부를 표현할 때 ‘박빙(薄氷)의 승부’란 말이 그나마 자주 쓰이니 박무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짐작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일일이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정도로 존댓말은 파괴되고 있으시고, 한자는 남용되고 있으신 게 요즘 우리 생활 어문이다. 국가적으로 신경을 쓰셔야 할 부분인 게 분명하다. / 김문권 한국경제매거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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