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전성기의 역사와 추억이 살아 숨쉬던 또 하나의 극장이 사라졌다. 서울 명동의 상징적 문화 공간으로 팬들에게 사랑받던 중앙시네마(옛 중앙극장)가 지난 5월 31일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시’와 ‘허트로커’등 2편의 상영을 끝으로 76년 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1934년 개관한 중앙극장은 재개봉관이었지만 명동입구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연인들과 올드 팬이 즐겨 찾던 영화관이었다.

명동의 중앙시네마 76년 만에 문닫아
국제극장, 국도극장, 스카라 뒤이어 
멀티플렉스에 맥못추고 잇달아 폐관 
대한극장, 단성사 등은 변신에 성공









◇76년 만에 폐관한 중앙시네마. 한 때는 우리나라 영화흥행사를 선도했던 추억의 명소였다.

1956년 6월 ‘극장왕’이라 불리던 벽산그룹 창업자인 고 김인득 회장이 경영난에 처해있던 중앙극장을 인수, 개봉관으로 단장해서 멜로나 순수예술영화 전문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이든 사람들은 이 영화관에서 아카데미상 수상작들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록키’ ‘사관과 신사’ ‘디어 헌터’ ‘토요일 밤의 열기’등을 감상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

1990년대 들어 한 건물 안에 여러 개 상영관과 식당, 카페, 쇼핑타운, 대형주차장 등 부대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 복합건물이 속속 등장하면서 스크린이 하나뿐인 단일관들은 옛 명성을 잃기 시작했다.

중앙극장은 1998년에는 복합 3개관으로 재개관하면서 중앙시네마로 명칭을 바꾸고 2000년에는 5개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모습을 갖췄으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골수 영화 팬들은 중앙시네마의 퇴장이 아쉽기만 하다. 박흥진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원)은 “중앙시네마의 폐관이 마치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페이지를 닫아버리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또 “고교생 때 존 웨인 주연의 웨스턴 영화 ‘리오 브라보’와 ‘로마의 휴일’도 그곳에서 감명 깊게 봤으며 ‘디어 헌터’를 마지막으로 본 뒤 미국으로 왔다”고 덧붙였다.

중앙시네마뿐이 아니다.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극장, 을지로 4가 국도극장, 을지로 3가 스카라 등 한국 영화흥행사를 선도했던 극장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연달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충무로의 대한극장과 종로 3가의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만이 변신을 거듭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907년 개관한 단성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작영화 ‘의리적 구토’(1919년)와 나운규의 민족영화 ‘아리랑’(1926년),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년) 등을 상영한 유서 깊은 영화관이었다.

2008년 부도 이후 전국적인 영화관 체인업체인 씨너스가 임대, 오는 11월 개관을 목표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1960년 서울키네마로 개관한 피카디리는 전국에 59개 영화관을 갖고 있는 롯데시네마가 지난 6월 인수, 상영관 8개관을 갖춘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관으로 영업 중이다.  

1935년 일본인 건축사가 설계해 지은 스카라극장은 모더니즘 건축양식으로 국내 초창기 건축사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2006년 문화재청이 이 극장을 근대문화재로 등록을 예고하자 재산권 행사제한을 우려한 건물주가 2009년 극장을 헐어버렸다.

1957년 문을 연 명보극장은 1994년 명보플라자로 업그레이드, 국내 최초로 5개 상영관을 갖추고 멀티플렉스시대를 선도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말 복합문화공간인 명보아트홀로 변신, 뮤지컬과 콘서트를 주로 공연하고 있다.

1955년 미국 20세기 폭스필름이 설계한 대한극장은 2001년 말 250억 원을 들여 11개 상영관을 구비한 대형영화관으로 거듭났다. 

 중앙시네마 매표소 앞에는 아직도 “중앙시네마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지만 영화처럼 좋은 날이 펼쳐지기 바랍니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76년 만의 폐관이 한 편의 영화 같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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