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환 서울경제신문 부동산부 차장

지난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얼마전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지인인 A씨를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중 A씨는 “이민 가서 10년 넘게 살다 보니 ‘뭐든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한국에 살 때는 자신 스스로에게 최고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았지만 반드시 그것이 최선은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자녀들에게도 이제는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시행 삼성물산에 계약해지 엄포

 땅값 8조 지불 할 새사업자 난망… 실리 잃을 수도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1등’이니 ‘최고’ ‘최대’라는 단어에 무척이나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이면 늘 신문의 사회면 머리를 장식하는 ‘수능 만점자’에 대한 화제성 기사가 그렇고, 가장 큰 것, 비싼 것, 최고, 최대에 늘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런 것 중 대부분은 실제 자신의 삶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동경, 그리고 때로는 질투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역사적으로 늘 대륙을 향해 왔던 민족적 기질의 발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최초 추진당시 부동산 시장은 물론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도 아마 사업에 따라붙은 다양한 수식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단군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화려한 표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땅값만 8조원이요 총사업비가 31조원이니 그런 수식어가 붙는 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개발계획이 나온 직후 일부에서는 용산이 도심을 대체할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를 것이란 부푼 기대감까지 나왔다.

하지만 사업에 시동을 건지 4년이 지난 지금 ‘용산국제업무지구’의 현재와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사업자는 꽁꽁 얼어붙어 버린 경기 탓에 땅값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토지매각자이자 사업의 최대주주인 코레일과 건설투자자 주관사인 삼성물산의 행보는 마치 끝을 향해 레일 위를 달리자는 폭주기관차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지난 20일 코레일은  “국민여러분, 제발 삼성물산을 말려주세요”라는 장문의 보도자료를 내고 삼성에게 사업에서 빠져달라고 요구해 양 당사자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지는 양상이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코레일의 이 같은 행보가 최선일까. 만약 코레일이 주장하는 것처럼 계약을 해지할 경우 그 이후를 생각해 보자. 단순히 생각하면 계약이 해지되면 법률상 귀책사유가 사업시행자에게 있으므로 이미 납부한 계약금 등은 코레일에 귀속된다. 하지만 그 이후의 대안은?
일단 코레일이 당초 계획대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추진하려면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

실제로 코레일측은 최근 ‘성실한’ 외부 건설투자자에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누가 지금 같은 상황에 이 어마어마한 사업에 나설 수 있을까. 현실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투자자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설사 새로운 사업자를 찾더라도 기존 사업 조건으로는 어렵다. 8조원이라는 땅값 자체가 부동산 경기가 최고점에 달했을때, 그것도 업체 간 치열한 경쟁 속에 나온 가격이다. 일부에서는 “지금은 입찰당시 코레일이 제시했던 최저가(5조8,000억원)에도 새 투자자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최선은 당초 계획과 일정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장 상황이 정상적일 때를 전제로 한다. 사업이 좌초 또는 표류했을 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사업이 좌초되지 않도록 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할 시점이다.
 
비록 최선은 아니지만 억지로 무리하게 밀어 붙이기보다는 다소 숨을 고르면서 연기하는 것도 ‘차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코레일의 고집이 ‘명분’을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자칫 ‘실익’은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 곰곰이 되새겨볼 일이다. /정두환 서울경제신문 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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