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자금도 없이 대박 꿈꾸다 시공사·금융권 부실 불러

 장기 관리․운영으로 안정적 수익 올리는 구조로 새판짜야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31조원)’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붙었던 용산 국제업무지구개발 사업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사업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땅 주인인 코레일과 실질적인 사업 주관사인 삼성물산 간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으로 표류하고 있다.

코레일이 4조5000억원에 달하는 랜드마크 빌딩을 선매입하는 깜짝카드를 내놓아 지급보증을 거부하는 삼성물산을 내치고 사업을 추진하려 하지만, 새 파트너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판교신도시 중심 상업용지에 조성될 예정이던 알파돔시티도 토지주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지급할 땅값 및 이자납부 유예기간이 지난달로 끝나는 위기 상태에서 출자사들의 유상증자와 PF를 통해 약 1조원의 자금을 조달해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양재동 복합터미널 사업은 최초 시공사들이 연이어 워크아웃 되면서 결국 시행사 파산신청을 내고 시공사 변경에 들어갔다.

현재 진행 중인 초대형 PF 사업들이 이처럼 한결같이 자금조달 문제로 사업 무산 위기에 처하는 것의 첫 번째 이유는 시장 침체다. 하지만 이 대형 프로젝트들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초 사업 계획에서부터 부동산 시장이 ‘이상 과열’상태가 아니고서는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구조로 돼 있다. 문제가 많은 ‘한국적 PF 사업’의 고질병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PF 사업은 자금력이 빈약한 시행사들이 앞에 나서 초기 사업 계획을 짠 뒤 시공사와 전주(錢主ㆍ대개는 은행 또는 저축은행 등 금융권)에 손을 벌려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주종을 이룬다. 외국에선 자본력을 갖춘 시행사(사업 주관사)가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 프로젝트를 주도하거나, 최소한 대상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확실히 확보한 뒤 사업을 벌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시행사 자금력이 없다 보니 금융권에서 고리의 대출을 받는다. 그러나 국내 금융권은 절대로 위험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은행권은 담보능력을 가진 시공사에 땅값 대출에 대한 지급보증과 책임 준공을 요구한다. 프로젝트의 토지대금에서 건물 준공에 이르기까지 사실상의 모든 투자 리스크를 건설사가 떠안는 형태로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모든 위험을 짊어진 건설사는 시공비를 크게 올릴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스럽게 고가분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건설사가 사실상 프로젝트를 주관하다 보니 장기적인 사업플랜에 의한 관리ㆍ운영이 있을 리 만무하다. 분양 이후의 전문적인 사업 운영 및 관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높은 가격에 빨리 분양을 털자’는 게 당면 목표일뿐이다. 일단 분양하면 나 몰라라 하는 식의 ‘먹튀’사업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기형적인 사업구조는 시장이 활황기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몰려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거나 조그만 침체기에 빠져도 사업성이 급전직하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10년여 간은 국내 부동산 시장이 이상 과열에 가까울 정도로 활황을 구가해 파산하는 건설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지난 10년 같은 활황은 당분간 오기 힘들다. 따라서 현재 진행중인 초대형 PF사업들은 새롭게 판을 짜지 않는 한 좌초할 확률이 높다.

우선 초기 사업 구조를 ‘먹튀’에서 ‘장기 운영 및 투자’개념으로 바꿔야 한다. 처음 사업계획에서부터 한번 분양으로 목돈을 챙기는 반짝 사업이 아니라, 장기간 관리ㆍ운영을 통해 적지만 오랫동안 수익을 남기는 안정적인 구조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금융권도 담보까지 잡은 안전한 상태에서 높은 이자수익만 챙기는 현행의 ‘고리대금’방식에서 벗어나 투자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순 대출자가 아니라 사업성을 보고 지분투자를 하거나 장기투자자가 되야 한다.

현재의 금융권의 투자분석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건설사도 리스크를 떠안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시공비를 낮출 수 있다. 그러면 당연히 분양가는 낮아진다. 물론 단기간에 떼돈을 버는 사람은 줄어들겠지만 사업의 안정성과 영속성은 훨씬 높아진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행태도 줄어드는 부수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송영웅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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