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격언 - ■어떤 골프의 명수도 30cm의 퍼트를 반드시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 버너드 다윈

유조선이나 전함 등 대형 선박들은 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암초에 부딪히거나 외부 공격을 받더라도 침몰하지 않도록 선체 내부를 격실로 만든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부서지지 않는 격벽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선체의 어느 한 부위가 손상을 입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영향을 그 부분으로 국한시키기 위한 것이다.

골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격실이다. 게임마다, 홀마다, 샷마다 견고한 마음의 격실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운동하는 동안 내내 집착과 욕심 자학 분노 미련 아쉬움 등으로 가득 찬 무거운 등짐을 져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담하기 짝이 없었던 지난 홀의 기억을 끊지 못하고 다음 홀에 서면 어김없이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정상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없다.

지난 라운드의 좋은 스코어와 지난 홀의 환상적인 샷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좋은 기억은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욕심을 낳고, 그 욕심은 기어코 몸과 마음을 긴장시켜 다음 플레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골프처럼 전염성이 강한 것도 드물다. 지난 홀의 치명적인 실수가 다음 홀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모든 실수와 불운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훌훌 떨쳐버리고 다음 홀에서는 백지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홀의 멋진 버디나 벙커에서의 환상적인 파 세이브 등을 반추하며 즐기고 싶은 플레이도 다음 홀에서는 깨끗이 잊도록 노력해야 한다.
홀마다, 샷마다 한결같이 백지상태로 임할 수만 있다면 골프의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주말골퍼라도 최소한 지난 라운드, 지난 홀의 기억을 잊고 가능한 한 새로운 빈 마음으로 노력하면 격심한 업다운을 예방하고 한결 안정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잭 니클로스는 강인한 정신력의 대명사로 불린다. 마스터스대회 파3 홀에서 거푸 공을 연못에 빠뜨려 여덟 타를 치고도 다음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던 그를 두고 TV 해설을 하던 왕년의 스타 켄 벤츄리가 “단언합니다. 잭은 아까 파3에서 8을 친 기억을 까맣게 지워버렸다는 걸. 그는 충분히 그럴 의지가 있는 골퍼입니다.”고 해설한 기억이 난다.

잭 니클로스는 적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했을 때 미련 없이 꼬리를 잘라 버리고 달아나 생명을 보전하는 도마뱀의 지혜를 터득했던 것이다.
어디 골프에서만 격실이 필요하랴.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인생살이에서도 격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제의 실수와 실패에 연연해 고통의 나날을 이어가는 것이나, 닥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해 스트레스에 쌓이는 일, 놓쳐버린 기회를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일, 좋았던 과거를 반추하며 오늘을 허송세월 하는 일 등은 바로 마음의 격실을 두지 않아 초래되는 불행이자 고통이다.

기업의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에게 격실 개념은 필요하다. 한 사업의 실패가 다른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선 성공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어느 부서의 잘못된 근무관행이 회사 전체로 확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종의 격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CEO가 할 일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에 안주하다 어느 한 계열사의 경영 실패로 그룹 전체가 대책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 생기는 것도 이런 격실 개념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한 샷 한 샷이 모여 한 홀의 성적이 만들어지고 한 홀 한 홀의 성적이 모여 라운드의 스코어가 결정되지만 모든 샷은 항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하고 모든 홀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홀이어야 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방민준 골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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