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벨재단 스티브 린튼 회장

미국인 선교사가 100년전 이 땅에 쏟은 ‘한국사랑’이 그 손자들에 의해 4대째 이어지고 있다. 대북의료지원 민간단체인 유진벨재단 스티브 린튼(한국명 인세반·60)회장은 1912년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온 윌리엄 린튼(인돈·1891~1960)박사의 손자이다.

     대북의료지원 유진벨재단 인세반회장
     의약품전달위해 15년간 70여 회 방북
     민간후원금으로 결핵약등 540억 지원
     항일운동 조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유진벨재단은 2010년도 하반기 방북사업으로 분주하다. 내달에도 북한의 결핵전문병원을 다녀오는 스케줄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인세반 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주민에 만연된 치명적인 다제내성(MDR-TB)결핵은 치료약을 끊으면 불치병이 된다.”며 “천암함 사태로 남북관계가 아직 긴장국면이지만 결핵약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북한의 결핵요양소와 내성결핵센터 등을 방문, 환자들을 돌아보고 치료약을 전달한 뒤 돌아왔다. 다제내성 결핵환자는 내성이 생겨 약이 듣지 않고 재발한 환자를 말한다. 이런 환자는 청각상실과 손발저림 등 부작용을 일으켜 일반 결핵약에 비해 100배나 강한 약을 2년6개월 이상 복용해야 치료할 수 있다.

◇인세반 회장(왼쪽)이 북한의 결핵전문병원에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진벨재단은 유진벨(1868~1925)선교사의 한국선교 100주년을 기념해서 설립된 비영리민간단체이다.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난 인 회장은 네 살 때부터 전남 순천에서 자랐다.

1975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과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한국학연구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는 1979년 첫 방북 때 식량난에 허덕이는 실태를 보고 북한주민 돕기에 평생을 걸었다. 컬럼비아대 부교수였던 인 회장은 1995년 미국에 유진벨재단을 세우고 콩, 옥수수 등 곡물을 북한에 보내기 시작했다.

인도적 지원에 믿음이 생긴 북한은 1997년 의료지원사업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2000년에는 서울에도 재단을 설립, 결핵퇴치 및 각종 질병치료용 의약품과 진단기계, 수술실 의료기기 등을 본격적으로 지원했다. 유진벨재단은 1995년부터 지원실적을 연도별, 분야별로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다.

2009년 말 현재 총지원액은 540억원에 달하고 있다. 인 회장은 지원병원을 직접 방문해서 의약품 등을 전달하기위해 지금까지 70여 차례나 북한을 다녀왔다. 재단관계자는 “내성결핵환자 1대1 결연후원은 월 9만5000 원, 2대1 결연후원은 월 4만8000 원”이라며 “후원자가 원하면 그분의 성명을 기재해서 의약품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유진벨재단은 만해평화상(2000년), 아산상 의료봉사상(2005년) 등을 수상했다.

린튼 가문의 한국사랑 뿌리는 1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선교활동을 벌인 유진벨 선교사는 인 회장의 진외증조부(아버지의 외조부). 유진벨 선교사는 일제 강점기 목포에 정명ㆍ영흥학교, 광주에 숭일ㆍ수피아여학교를 잇달아 설립했다.

정부가 지난 3ㆍ1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윌리엄 린튼 박사는 인 회장의 할아버지. 그는 군산 신흥학교장이던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하는 등 항일운동을 하다가 1940년 강제 추방됐다. 광복 후에는 1959년 대전대학(현 한남대)을 설립해 초대학장을 지내며 평생을 선교와 교육문화사업에 바쳤다.

인 회장의 아버지 휴 린튼(인휴ㆍ1924~1984)목사는 ‘순천의 검정고무신’으로 불리며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다. 어머니 베티(인애자ㆍ83)여사도 순천에서 결핵재활원을 운영하면서 30년 이상 결핵퇴치사업을 한 공로로 국민훈장과 호암상을 받았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소장인 존 린튼(인요한ㆍ51)박사는 인 회장의 동생이다. 형제는 “우리의 고향은 순천이요 영혼은 토종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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