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행은 남의 불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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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행은 남의 불구경
  • 방민준
  • 승인 2010.09.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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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골퍼들은 몇 개 안 되는 클럽으로 여러 가지 많은 스윙을 했지만, 현대의 골퍼들은 많은 클럽을 써서 똑같은 스윙을 한다.      - 버너드 다윈

어느 날 골프마니아 네 명이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라운드 도중에 한 명이 옆 홀에서 날아온 볼에 맞아 쓰러졌다. 동반자들은 비상전화로 클럽하우스에 연락했다.

금방 골프장 직원이 전동 카트를 타고 나타나 쓰러진 사람을 전동 카트에 태웠다. 직원이 동반자 중 누군가가 함께 탈 줄 알고 기다리자 세 명의 사나이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남은 홀을 마저 끝내고 따라 갈 테니 먼저 병원으로 데려 가시오.”
직원이 전동 카트를 몰고 사라지자 나머지 셋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골프를 즐겼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자주 있는 이런 일이 몇 년 전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도 벌어졌었다.
골프장에서 동반자가 나의 불행을 측은히 생각하고 위로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수준급의 골퍼임을 자처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입으로는 ‘골프는 남을 배려하는 신사의 게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라운드 중에 진심으로 동반자를 배려하는 골퍼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른바 속물 골퍼들은 남의 불행을 즐기고 자신만 빼고 나머지 3명이 불행에 빠지기를 기대한다.

이런 골퍼들에게는 자신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동반자의 불행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불행에 따른 반사이익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유머 모음집 ‘지혜로운 자의 농담’의 주인공인 천의 얼굴을 가진 우리의 사랑스런 물라 나스루딘이 속물골퍼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징검다리 근처에 앉아 있던 나스루딘은 열 명의 장님들이 그 강을 건너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는 한 사람 당 1페니를 받고 강을 건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들은 나스루딘의 제의를 수락했고 나스루딘은 그들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장님을 강 건너 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나스루딘이 열 번째 장님을 건네주려 했을 때 이 불행한 장님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 떠내려 가버렸다.
무언가 사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아홉 명의 장님 생존자들이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나스루딘!”
물라 나스루딘이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1페니를 덜 받게 되었을 뿐입니다.”

또 다른 일화도 상대방의 불행을 기화로 이익을 챙기려는 속물들의 추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날 유태교의 율법학자인 랍비와 가톨릭 성직자가 각각 보트를 타고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가톨릭 성직자가 물고기의 입질에 흥분해서 날뛰다가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두어 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가 올라오자 랍비가 허우적대는 가톨릭 성직자에게 소리쳤다. “어이 신부친구! 당신이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내가 당신의 보트를 가져도 되겠소?”

성직자들마저 자신의 이익을 좇아 남의 불행을 방관하며 본분을 망각하는데 동반자를 혼내주려고 칼을 갈고 나온 골프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골프장에서 나의 불행과 실수는 동반자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의 재미를 줄뿐이다. 믿을 데라곤 자신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속물 골퍼가 득시글댄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두 번의 실수를 해도 곧 평정심을 되찾아 자신의 리듬에 따라 플레이를 펼치는 정통 골퍼에게 속물골퍼는 맥을 못 춘다. 지능적인 방해공작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는 사람을 만나면 속물골퍼는 스스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

골프를 제대로 즐기려면 적대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골프 고수들은 적대감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플레이를 하기 위해 먼저 남을 먼저 배려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방민준 골프 에세이스트

[방민준]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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