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절망적인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제2의 인생을 보람차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 있는 덕포진교육박물관의 김동선(69) 이인숙(63) 부부관장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서울 진명여고 학생회장 출신으로 이화여대 교육과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가 된 이씨는 교직선배인 김씨를 만나 부부가 됐다. 행복하기만 했던 이들에게 1992년 갑작스런 불행이 닥쳤다. 아내가 버스교통사고를 당한 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앞을 못 보게 된 것이다.

서울 금북초교 3학년 2반 담임을 끝으로 22년간 몸담았던 교직에서 중도하차한 이씨는 좌절감 속에 자살도 여러 번 기도했다.
역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은 깊은 고뇌 끝에 결단을 내렸다. 학교에 사표를 던지고 살던 대치동 아파트를 팔았다. 아내가 청춘을 바친 교직의 꿈과 희망을 되살려 주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고향인 김포로 내려가 조선시대의 사적지 덕포진이 지척인 대곶면 신안리에 터전을 잡았다. 두 사람의 퇴직금에 사재를 보태 4년을 준비해서 1996년 덕포진교육박물관을 세웠다. 정부지원 없이 입장료 수입만으로 운영되는 사설박물관이다.

아내의 3학년 2반 교실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교실 복판의 무쇠 난로에는 찌그러진 양은 도시락이 쌓여있고 교탁 옆에는 낡은 풍금이 놓여 있다. 필자가 박물관을 찾은 지난 8일 오전 학교종이 ‘땡땡 땡’ 세 번 울리자 40여명의 어른학생들이 교실에 자리를 잡았다.

김동선 덕포진교육박물관장의 순애보
사고로 실명 후 교직포기한 아내위해 퇴직금 등 사재털어 사설박물관 세워
부인 이인숙씨는 3학년2반 교실서 수업


서울과 인천의 복지회관, 노인회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씨는 반장과 부반장을 뽑고 나서 풍금의 건반을 능숙하게 치면서 음악수업을 시작했다. 40~70대 학생들은 오빠생각, 섬집아기, 고향의 봄 등을 풍금반주에 맞춰 부르며 손뼉을 치면서 동심으로 돌아갔다. 유머러스한 입담과 율동에는 까르르 배를 잡고 웃었고 감사와 나눔, 배려를 강조하는 훈화에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 아침 라디오 뉴스에서 행복전도사 최윤희씨 부부의 동반자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긍정적인 삶과 건강을 강조했다. 실명한 이씨의 캄캄한 영혼에 희망의 빛을 비춰준 것은 시였다. 실명 후 라디오에서 들은 시를 녹음해두고 반복청취를 거듭하다 보니 130여 편의 시를 암송하게 됐다.

그는 7년 전 신경림 시인이 이 교실에서 낭송한 ‘갈대’라는 시를 잊지 못한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부부는 박물관 3층 건물 옆에 주거용으로 개조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한다. 이씨는 그래도 옛날처럼 교단에 설 수 있는 나날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성교육관에는 50~60년대 초 중등 교과서, 교복, 교모, 책가방, 통지표, 칠판 대용으로 쓰던 석판(石板) 등이 전시돼있다.

농경문화관에는 탈곡기, 소달구지, 도리깨, 가마니 짜는 기계, 낫, 괭이 등 전통 농기구들을 갖춰놓았다. 이날 오후에는 한 떼의 초등학생들이 ‘엄마 아빠 학교 다닐 적에’란 슬로건이 적힌 추억의 교실로 몰려들었다. 이번엔 남편이 종을 세 번 치고 국어수업을 시작했다.

이씨는 인터뷰 중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히는 헬렌켈러 여사의 ‘Three Days To See’를 조용히 암송했다. ‘3일만 볼 수 있다면’이씨는 무슨 일부터 하고 싶을까?

헬렌켈러가 스승인 설리반의 모습부터 보고 싶다고 했듯이, 이씨는 18년 동안이나 못 본 순애보 남편의 얼굴을 한없이 보리라. 그리고는 3학년 2반 아이들을 숲 속의 꽃길로 초대해 시와 음악을 들려주겠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집을 석가헌(夕佳軒)이라 했던가? 노교사 부부야말로 석가헌이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김동선ㆍ이인숙 부부관장이 수업에 앞서 해맑은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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