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아내에게 묻고 의지해 살던 사내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죽고 말았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는 사내, 허둥지둥 할뿐 뭘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답답한 문상객 중 한명이 기어이 빈축을 줬다. 그러자 그 사내 눈물 글썽이는 하는 말 “우리 마누라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잘 이야기를 해줄 텐데…”

제 삼자 또는 날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장려할 일이다. 그러나 자기 주관이나 아이디어가 전혀 없는 상태서 남의 것을 이해도 못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실패할 때 원인도 모르고 해결방도도 모른다.

모든 것을 캐디에게 묻는 골퍼가 있다. 대개의 골프장은 야디지북이나 표지석에 홀의 그림이 있어 형태나 길이를 알 수 있다.
가령 내리막에 오른 쪽으로 살짝 꺾여있는 365미터의 파4홀. 티잉그라운드서 그린이 다 보이고 핀깃발 색깔도 알 수 있다. 거리나 모양은 묻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아니, 물을 수도 있다. “365미터가 화이트 티 기준인가요?”

여기서 캐디에게 추가로 물어볼 것은 ‘좌우에 오비나 해저드가 없느냐? 지형 상 슬라이스 또는 훅 어느 것이 잘 나느냐?’ 정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골퍼가 있단 말이다. 캐디에게 모든 걸 의존하는 이 사람은 수도 없는 질문을 해댄다.         

“몇 번 홀이니?”(‘지금 시작하니까 1번 홀이지’)
“길이가 얼마지?”(‘쓰여 있잖아?’)
“뭘루 치지?”(‘골프채로 쳐야지. 드라이버!’)

티샷이 쪼루로 100이나 겨우 나갔을까 말까이다. 남은 거리 165미터. 뭘로 칠까 물어서 다시 몽둥이질을 했건만 볼 대신 땅만 쳐서 바로 곁에 떨어졌다. “얼마 남았지?”(‘다시 165야!’)

쓰리온도 되지 않고 결국 4온. “홀까지 얼말까?”(‘퍼팅 길이를 묻다니!’) “내리막이니, 오르막이니?”(‘이 질문은 잘 하셨어. 옆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심한 내리막이지. 감안해서 살살 치셔.’)

볼은 홀을 한참 지났다. “오르막이니, 내리막이니?”(‘내리막 반대가 뭘까?’) 오르막이어서 캐디는 좀 세게 치라 조언을 했지만 공은 짧다. 컨시드 받아 겨우 끝. “언냐? 나 뭐했니?”(‘많이 쳐서 정신이 없긴 할 거다. 파4홀에서 4학년 3반이니 트리플이지!’)

이 홀에 대한 질문은 끝나는 듯 했지만 아직 아니다. ‘핸디캡 몇 번 홀이니? 다른 사람은 몇 타씩 치니? 대개 나처럼 트리플을 밥 먹듯 하는 홀이지?’ 등등이다. 그 골퍼, 형편없이 쳤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는지 고래를 갸웃거리고 채로 땅도 치고 하면서 자학을 한다. 다음 홀로 이동하면서 결정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언냐! 나 오늘 왜 이러니?”

그때 담당 캐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답한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실제로 김 작가 주위에 모든 걸 캐디에게 묻는 노교수님이 계신다.
교수라면 뭐든 묻기보단 대답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보기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실 그분은 서너 홀마다 한 번씩 현재시각도 물었고 본인이 지금 보고 느끼고 있는 날씨상황, 특히 바람방향에 대해 물었다.

수도권 R골프장은 ‘묻지마홀’을 하나 두고 있다. 거리표시도 없고 캐디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재미나 장난이지 경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캐디와 상의하되 최종 결정은 경기자 자신이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어디 골프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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