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의 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이 점차 미궁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채권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현대그룹 측에 인수자금 조달 증빙자료의 하나로 프랑스 나티시스은행과의 대출 계약서(약 1조2000억원)나 세부 계약조건을 담은 ‘텀 시트’(Term Sheet)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계약서 대신 대출확인서를 제출했고 채권단은 이에 따라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백지화할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그룹과 인수경합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서로 명예훼손, 무고 등의 혐의로 고소사태를 벌이고 있고 현대그룹은 서울중앙지법에 MOU해지금지가처분 신청까지 해놓고 있어 사태는 법정으로까지 비화됐다. 
 
두 그룹, 인수 나설 자격 있나?
 현대건설 인수가 마치 정씨 가문 내의 일인양 사태가 진전돼온 데에는 채권단의 조정 미숙과 흥미 위주로 흐른 주변 여론의 탓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양측이 10년 전에 벌였던 이른바 ‘왕자의 난’ 행태를 재연하는 상황에서 두 그룹의 인수 자격을 뒤늦게나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5조원 이상씩 내고 현대건설을 인수해가겠다는 데에야 자격 시비를 벌일 수는 없겠다. 그러나 법적 요건을 떠나 오늘의 현대건설 사태가 있게 한 장본인들이 누구인가를 되돌아보면 두 그룹은 이번 인수전에서 스스로 빠지는 게 옳은 처신이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01년 채권단의 공동관리에 들어갔다.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갈 때 이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한 자금으로 공적자금을 포함, 총 3조원이 투입됐다. 그 때부터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에 대한 ‘연고권’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국민에게 빚을 잔뜩 진 입장이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은 고 정몽헌 현대그룹회장과 함께 90년대말 몇 년 동안 현대건설의 공동회장을 지냈다. 현대건설의 자금난이 시작됐을 때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회생을 위한 지원을 외면했고 곧 이어 왕자의 난이 터지게 됐다. 말하자면 도덕적으로는 가장 자격 없는 두 그룹이 10년 세월의 망각을 딛고 인수전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배나무 밑 갓 끈 고쳐매지 말아야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현대그룹이 써낸 5조5100억원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건설 매각 적정 가격을 4조3000억원 가량으로 봤다. 경제부처와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해 자칫 제2의 대우건설 사태가 발생할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한 편에서는 정치권 개입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도 있다. ‘현정권의 유력자들이 어느 쪽을 선호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차기 유력 대선 주자와 선이 닿아있어 시일을 끌며 차기정권까지 인수전을 끌어갈 복안’이라는 식이다. 대기업 매각 때마다 항상 떠도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현대건설의 비중에 걸맞게 매우 그럴 듯하게 시중에 떠돌고 있다.

양측이 써낸 응찰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에서 정치권 개입설을 얼토당토 않은 얘기로 치부해버릴 수만도 없다. 건설업이 그 속성상 정치권과 유착하기 쉬운 업종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정치권은 ‘갓 끈을 고쳐매지 말아야’ 한다.

채권단이 지나친 욕심을 버린다면 현대건설을 인수할 바람직한 인수자를 찾기가 어렵지만도 않아 보인다. 현대건설은 올들어 지난 3분기까지 6조9000억원의 매출과 46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명실상부한 국내 1위의 건설업체다. 1947년에 세워져 건설관련 기술과 국내외 공사 수주 노하우가 최대로 축적돼있는 업체다. 당연히 협력업체와 임직원들의 수준도 국내 최고 수준인 ‘우량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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