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노원구 공릉동 화랑대역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랑구 상봉동에서 춘천까지 81.3㎞를 잇는 경춘선 복선전철이 지난 21일부터 개통됨에 따라 성북역~화랑대역~퇴계원으로 이어지는 선로가 폐쇄됐기 때문이다.

경춘선 복선전철개통으로 선로폐쇄
휴가장병과 MT 대학생들 지나던 곳 
71년된 등록문화재 역사는 영구보전
지난 20일 음악회 열고 역사 속으로

서울에서 춘천까지 2시간 걸렸으나 앞으로는 1시간 19분(급행 63분)으로 단축된다. 화랑대역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근대양식으로 지어진 목조건물로 추억과 낭만이 켜켜이 쌓인 간이역이었다.

태릉역으로 영업을 시작해 1958년부터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2006년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된 화랑대역사와 주변은 화랑천과 연계해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지하철6호선 화랑대역은 별개의 역이다. 폐역소식이 알려지자 화랑대역에서는 최근 다양한 문화행사가 줄을 이었다.

현악4중주, 하모니카, 오카리나연주회가 잇달아 열렸다. 역과 기차를 주제로 한 시화전과 사진전시회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노원구문인협회는 지난달 20일 화랑대역에서 김유정역까지 열차 1량을 전세내어 ‘시가 기차를 타다’는 제목의 이색적인 시낭송회를 열었다.

◇‘경춘선 마지막 열차 추억담기 작은 음악회’에서 육사 밴드연주에 맞춰 합창단이 노래 부르고 있다

화랑대역은 1년 전부터 승객들이 자신이나 가족, 연인에게 쓴 편지를 타임캡슐에 보관했다가 며칠 전 우송해주기도 했다. 역무원들은 6개의 방명록 모음집을 걸어놓고 승객들의 짧은 사연도 받아놓았다. 오래된 간이역이지만 피아노와 기타까지 갖춰놓아 문화행사가 없는 날에는 승객들이 연주할 수 있게 했다.


지난 20일 오후 2시30분 화랑대역에서‘경춘선 마지막 열차 추억담기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2시간 넘게 계속된 행사에는 화랑대역의 퇴장을 아쉬워하는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 노원구 소년소녀합창단이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로 시작되는 ‘기차와 소나무’를 합창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오후 2시 43분 성북역발 남춘천행 무궁화호 디젤열차가 7분만에 화랑대역에 정차했다. 기관사가 잠시 내려 꽃다발을 받았다. 열차는 어머니합창단이 육군사관학교 밴드에 맞춰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뒤로 하고 시야에서 멀어졌다.

조수미씨가 불러 유명해진 이 노래는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매일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그리스 여인의 마음을 애절하게 묘사한 곡이다. 승객도 환송객도 두 손을 흔들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장면이 드라마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김동익 시인(68)은 ‘추억의 열차여! 안녕’이란 시를 낭송했다.

(…) 통학열차 시간 맞춰 뛰어가던 화랑대 간이역/ 방앗간 집 큰아들, 과수원 집 큰딸은 그렇게 희망실어 나른 기차와 함께 자랐네/ 이제는 기적소리 들을 수 없지만/ 큰소리로 불러보는 마지막 열차/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경춘선아 안녕, 화랑대역아 안녕//

인기가수 김수희씨는 자신의 히트곡 ‘남행열차’를 구성지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경춘선 열차에는 1970년대부터 젊음의 열정과 낭만이 배어 있었다. 더블 백을 매고 전방부대로 향하던 육군신병과 휴가장병들이 몸을 실었고, 80년대에는 대성리, 청평, 강촌, 가평 등지로 기타를 치면서 MT를 떠나던 대학생들이 단골이었다.

권재희 역장(55)은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화랑대역이 집보다 편한 곳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년3개월간 이곳에서 일한 권씨는 상봉역으로 옮겨 근무하게 된다. 화랑대역은 이날 밤 9시 남춘천발 청량리행 1838호 열차와 10시 31분 청량리발 남춘천행 1837호 열차가 엇갈려 통과함으로써 71년의 긴 ‘생애’를 마쳤다. 고희를 넘겨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화랑대역이여 아듀!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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