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먹어서 삼년이요 눈 어두워 삼년이요,
말 못해서 삼년이요 석 삼 년을 살고 나니,
배꽃 같던 요 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백옥 같던 요 내 손길 오리발이 다 되었네.
열새 무명 반물치마 눈물 씻기 다 젖었네.

민요 ‘시집살이’ 일부인데, 요즘 며느리를 이렇게 살라고 하는 시부모도 없겠지만, 이런 시집살이 하려는 며느리는 더욱더 없다. 혹시 비슷하게라도 인권이 유린된다고 생각되면 “시엄마, 지금 뭐라 하셨어요? 아이~ 이 집 밥맛이야!” 그러면서 당장 며느리사표를 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옛날 며느리는 다 겪은 일이란다. 며느리의 일반적 상황이 이 정도이었고, 좀 더 심한 집은 상상을 못하는 ‘팥쥐’ 버금가는 수난과 굴욕 속에 살았을 것이다. 거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지원군이 있었다면 그래도 견뎠으련만, 사방팔방에 적들만 우글거렸다.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세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그런데 이 시집살이 풍속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뭘’ 잘하려면 이런 시집살이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본다.  뭘=골프. 귀머거리 3년과 장님 3년 벙어리 삼년을 지나야 비로소 해병대유격대보다 더 빡센 고난의 며느리훈련이 끝난다고 했는데, 골프 역시 마찬가지로 ‘골프살이’를 일부러라도 해야 한다.

첫째, 함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남에게 하는 말을 ‘입에 쓴 보약’이라 하지만 쓰기만 할뿐 약효는 엉터리이거나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니, 한 귀로 들으나 두 귀로 들으나 모두 흘려야 한다. 상대가 뭐라 코치를 하면 “지금 PGA급 지도자에게 레슨을 받고 있거든요!”라고 말해버린다.

둘째, 보지도 말 일이다.
봐서는 안 될 것이 ‘예쁜 여자’의 노상방뇨 뿐만이 아니다. 너무 잘 치거나 아주 못 치는 사람의 스윙은 혹시 봐도 머릿속에 잔상이 남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김 작가 친구 중에는 타이거우즈의 허리를 꼬는 스윙을 보고 따라하다가 옆구리가 심히 고장나버린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의 스윙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 스윙을 따라하게 되는데, 골프만큼 맞춤동작이 필요한 것이 없다.

사람마다 자신의 체형, 체력과 습관 심지어는 성격에 따른 각자 고유의 스윙이 있는 법이다. 괜히 눈에 오래 담고 있다가는 자신의 스윙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정 보려거든 자신의 나이와 체형이 비슷한 프로골퍼의 스윙을 많이 참고를 하라 했다.
다만, 김 작가는 스윙이 대체로 빨라서 연습장에 가면 살살~ 천천히~ 치는 여자가 없는지 찾아 그 뒤 타석에 선다. (* 여자가 예쁘기만 하면 폼, 스윙과는 상관없지만!)   

셋째, 골프시집살이에서는 밥 먹을 때말고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골프를 배우고 나면 갑자기 말도 는다. 물론 골프와 관련된 것이지만, 단 하루라도 골프이야기를 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느낌이 든다.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도 ‘골프가 어쩌구 저쩌구~’ 하질 않나, 연습장서는 백돌이 주제에 새로 온 프로를 몰라보고 레슨을 하려고 덤빈다.

내가 아무리 좋다 해도 세상 사람들 기호와 일치할 수는 없다. 김 작가 주위에는 맞선자리에서 골프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딱지 맞고 40 넘은 지금까지 노총각으로 사는 녀석도 있다. 얄팍한 지식으로 상대를 가르치다가는 대상자의 골프를 망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리하자. ‘나는 아는 게 없다! 날 잘되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은 부모 밖에 없다!’가 골프와 인생의 정답이 아닐까?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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