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대 문리대 건너 한집에서 55년
 클래식 선율과 커피로 대학로의 증인
 방명록엔 김지하 시인 등 반가운 필체
 20대와 70대가 등 맞대고 공존하는 곳

우리는 오래 살 던 동네나 모교, 단골로 다니던 찻집 등을 다시 찾게 되면 젊은 날의 추억과 낭만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들이 옛날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지 않으면 반가운 마음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감회를 느끼게 된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4가 대학로에 있는 학림(學林)다방이 바로 그런 곳이다.
지금은 마로니에공원이 된 옛 서울대 문리대 건너편 그 장소에서 1956년 영업을 시작한 학림은 1976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문리대의 축제 명칭이 학림제였을 만큼 대학생들의 아지트였고,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지금은 복개되었지만 동숭동 초입부터 이화동까지 대학천이 흘렀고 문리대 정문 앞에는 작은 돌다리가 있었다. 학생들은 대학천을 센 강, 돌다리를 미라보다리라고 불렀고 학림은 제25강의실로 통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정겹고, 피아노 한 대와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여인 그림이 붙어 있던 학림은 4.19와 5.16 등 격변기를 거치면서 대학로의 산 증인이 되었다.

◇학림다방 이충열 사장이 뮤직 박스 안에서 클래식을 선곡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고집스럽게 클래식 음악만을 들려주고 있는 학림은 베토벤 등 음악가들의 흑백사진과 1500여장의 LP음반,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실내장식 등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1988년부터 비치해놓은 여러 권의 방명록에는 많은 이들이 추억여행 스케치 하듯 친필로 짧은 글들을 남겨놓았다. 소설가 김승옥 씨는 1990년 6월 15일 “방학이 끝나고 서울역에 새벽 5시 반쯤 내리면 갈 데가 없어서 이불과 책 보따리 들고 찾아와 새벽잠을 자던 학림! 나의 고향, 나의 청춘, 나의 상상, 내가 슬피 울던 곳, 볼레로를 청해 듣던 곳”이라고 썼다.

김지하 시인은 2001년 4월 3일 “학림시절은 내겐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혁명의 쓰라린 후유증, 그러나 로망스였다.”는 글을 남겼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2004년 1월 어느 날 써놓은 “달빛 밝은 밤이면 수만 리가 한 마을입니다.”는 시의 첫 행처럼 서정적이다. 

소설가 박태순, 시인 김정환·황지우, 가수 김민기, 철학자 김용옥, 가수 조영남 씨를 비롯해 이곳을 드나든 단골은 숱하게 많다. 학림에서 촬영한 영화와 드라마도 여러 편 된다.

영화 ‘챔피언’ ‘번지점프를 하다’ ‘강원도의 힘’과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등에서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장소로 나왔다. 학림은 커피 마니아들에게도 맛있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네 번째 사장이 된 이충열 대표(57)는 자체 커피공방에 로스터기를 설치하고 과테말라, 콜롬비아, 브라질, 케냐 등지에서 수입한 생두를 선별하고 조합해서 커피를 볶아낸다. 하루에 스무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셔가며 연구한 끝에 학림만의 독특하고 변함없는 맛을 찾아냈다.

이 사장은 “부부 또는 자녀와 함께 와서 학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손님이 많다.”며 “20대와 70대가 등을 맞대고 앉아 담소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오래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다방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문학평론가 황동일 씨의 글이 인상적이다.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인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선가 서성거리고 있다. 세속을 굽어보며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저 홀로 고고한 섬 속의 왕국처럼. 이 초현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쯤을 곁들여서.” /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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