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제목은 골프장에 이러이러한 사람은 오지 말고,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좀 왔으면 좋겠다는 뜻의 글인데, 용어는 1920년~30년대 사이의 표기방법이다. 풍자소설로 유명한 채만식 선생이 쓴 글로 1932년 7월 9일 조선일보에 실렸었단다.

그 시절이면 일제시대인데, 일부 계층에서는 재빠르게 서양 물이나 일본 물을 좀 먹어 모던 보이나 걸 이름을 얻은 듯. 요즘 말 ‘신세대’ 쯤에 해당할 텐데, 당시엔 모던...어쩌구 하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쉽게 말해 ‘또라이’나 ‘날라리’를 그리 불렀으니까.

‘모던뽀이’와 ‘모던껄’은 골프장에 오지 말고, 가족을 동반한 사람과 사무직 사람들만 왔으면 하는 작가의 염원이었지, 골프장에서 그렇게 손님을 골라서 입장시키려 간판을 붙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골프장 역사를 알아야 이 이야기 이해가 빠르겠다. 1900년 쯤 우리나라에 서양의 신종 운동인 골프가 들어왔지만 제대로 18홀 정규코스가 만들어진 것은 1924년 12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석곶리(오늘의 석관동·청량리 일대)에 세워진 ‘경성 꼬르푸 구락부’이었다. 총독부 고관과 기업인 등 돈깨나 있다는 80여명 회원들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 한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상당수 문화장르가 그랬듯 이 ‘꼬르푸’ 또한 들어올 때부터 대중들을 외면하여 ‘사치화’, ‘유흥화’ 개념이 강해 지금까지 그렇게 정착해버린 일면이 있다고 본다. 당연히 서민들은 골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지금의 이외수나 진중권 같은 논객에 해당하는 당시의 사회비판가 겸 소설가 채만식이 골프장 이용자들의 눈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내 친구가 경성부윤(서울시장)이 된다면 나는 그에게 권고하여 <모던 뽀이, 모던 껄 사절/가족동반자·두뇌노동자 대환영>이라는 패를 써 붙인 베이비골프장을 많이 만들어 놓게 하겠다.’라는 글을 기고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베이비골프장’은 어린 아이들이 이용하는 아동용이 아니고, 그 크기가 작은 간이 퍼블릭코스나 드라이빙레인지(연습장)를 말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서울서 아주 가까운 N골프장에 사회적 지명도가 아주 높은 특정인을 지칭해 ‘ㄱ 아무개와 ㅇ아무개 씨 출입금지!!’라는 경고 현수막이 붙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그 옛날의 ‘모던보이, 걸’은 아니었고, 도우미 언니들을 좀 함부로 했던 모양. 행패를 당한 캐디들이 분노하여 그렇게 한 것인데,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이만저만 불명예가 아니었다.

사실 따지자면 비싼 입장료를 낸다해도 골프장에서 받기 싫은 손님도 있을 것이고, 제 삼자가 봤을 때 ‘인간인지 의심이 되는 그런 사람’은 골프장에 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은 많은데 할 일이 없고, 남에게 예의를 차리기 싫은 3류 건달들은 건전한 운동장소인 골프장에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9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골프장에 꼭 와야 할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두뇌노동자’(육체노동자도 포함)들이다. 그들이 자기 아내나 아이들 또는 연세 많은 노인들을 모시고 올 때 대환영을 할 일이다.

어마어마한 클럽하우스 안에 어린이놀이터, 수영장이나 탁구대를 설치해도 될 것이고, 잔디밭 한 홀 정도에서는 노인들에게 게이트볼장으로 개방을 해도 잔디가 크게 상하지 않을 텐데... 쥐뿔도 골프장 사정도 모르는 내 생각일 뿐인가?!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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