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칼럼 - 삶의 뜨락에서

최근 불기 시작한 세시봉(C’est si bon)열풍은 가히 신드롬이라 할만하다. 7080세대는 물론 젊은이들까지 환호하면서 세대간 소통과 화합의 통로가 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대중문화평론가 겸 사진작가 최규성 씨(50)의 감회는 남다르다.

사진작가·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씨
10대부터 LP음반등 수집해온 컬렉터
최근 세시봉 열풍보면서 남다른 감회
영화 OST 유성기 픽쳐디스크도 소장

“1970년대 서울 YWCA에는 ‘청개구리’라는 공연무대가 있었습니다. 직원식당을 개조해서 만든 이곳에서 우리나라 포크음악의 역사가 시작됐지요. ‘청개구리’에서 양희은이 노래한 김민기 작곡의 ‘아침이슬’이 탄생했고 송창식ㆍ윤형주ㆍ김세환 등 대학생 포크가수들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불렀습니다. ‘청개구리’는 당시 청년들의 문화욕구 갈증을 풀어주는 유일한 해방구였으나 군사독재정권의 색안경과 적자운영으로 1년 후 문을 닫았지요. 2003년 한국일보 사진부기자였던 제가 같은 자리에 ‘청개구리’를 부활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최씨는 복고라는 키워드 하나를 붙잡고 40년 가까이 수집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절판된 대중문화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인터넷 ID는 ‘절판소장’이다.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위원을 지낸 그에게 방송국 PD들이 희귀본을 빌려가기도 한다.

최씨는 여러 군데 라디오 FM방송의 고정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라 스케줄이 비어있는 날이 거의 없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그의 70평대 아파트에 들어서니 방 2개와 거실도 모자라 안방까지 각종 자료로 꽉 찼다.

음악사적으로 모멘트가 되는 것들을 양보다 질 위주로 선별하는 것이 컬렉션의 특징이다. LP음반이 줄잡아 1만5000여 장, CD 5000여 장, 레이저 디스크는 3000여 장에 달한다. 지난해 봄에는 서울시가 청계천문화관에서 주최한 ‘서울대중가요, 서울을 노래하다’특별전에 소장 자료를 전시하고 도록을 발간해 호평을 받았다.

올해는 한국대중가수사전(민음사)을 출간하기위해 분주하다. 책에는 최초의 직업가수 채규엽(1930년)에서부터 3인조밴드 허클베리 핀(1999년)까지 국내 가수 160명의 앨범과 바이오그래피가 들어간다. 그가 아끼는 신식창가집(1908년)에는 경부선 철도개통을 기념해서 최남선 선생이 작사한 ‘최신경부철도가’의 가사가 수록돼있다.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라고 기차를 바람에 비유한 가사가 재미있다. LP음반 중에는 진귀한 것들이 많다. 한국최초의 락밴드 신중현의 애드포 1집에 있는 히트곡 ‘빗속의 여인’은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문화예술품 경매장에 자주 다니면서 희귀본을 찾는다. 최근에는 1966년 최고의 댄스가수 이금희에게 ‘세시봉’이 수여한 골든디스크를 낙찰받았다. 1958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초설’의 OST 유성기음반은 사진을 넣은 픽쳐디스크로 지금도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와 박암의 스틸사진과 주제가를 부른 나애심의 모습이 빛바랜 낭만으로 다가선다. 최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LP음반과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시사주간지에 6년간 연재한 ‘추억의 LP여행’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신문사를 나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문화평론가의 인생을 살고 있다.

최씨는 “G20 국가 중 대중음악박물관이 없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서 대중음악박물관이나 자료원 건립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진척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집이 우리나라 대중음악박물관이자 자료원인 셈이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