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잘·공

 
‘조사하면 다 나와’라고 하지만 조사를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게 많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 은행잔고라든가 부동산 등기현황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 아주 쉽다. 함께 목욕탕에 가면 안다. 옷 입었을 때 안 보이던 목걸이 같은 값진 장신구가 드러나서…가 아니다. 비누를 칠하는 중에는 샤워기를 꼭 잠그는 사람은 부자, 물 질질 흘리게 놔두고 다른 거 하는 사람은 가난뱅이라 보면 틀림없다.

중병에 고생하는 사람은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을 유심히 봐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전문의사도 잘 모른다. 그런데 실로 우스운 병인 감기에 걸린 사람은 바로 드러난다. 큰 병 가진 환자는 오히려 모임에 나와서 유쾌하게 술도 마시고 그러는데, 감기에 걸린 사람은 질질 흐르는 콧물 닦느라 휴지통을 끌어안고, 약 먹는다며 맥주 반잔도 마시지 않는다.

사랑 또한 감추기 힘든 것이라 했다. 여기서 이의 제기할 분이 계실 것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랑한 거 뻔히 아는데, 왜 남의 속도 몰라 주냐며 한탄하다 각기 다른 사람과 결혼했느냐고. 그러나 그들은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주위에 좋은 매파가 있어서 단단히 묶어줬으면 됐을 텐데, 다만 그들에게 연애코디네이터 노릇을 해줄 멘토가 없었을 뿐이다.

여러 정황을 봐서 혐의가 짙은 용의자를 심문할 때 예전에는 “네가 그랬지?! 다 알아!!”이렇게 윽박지르는 수사기법이 통한 모양인데, 요즘에도 그래가지고는 머리 좋은 범인을 이겨내지 못한단다. 프로파일러의 부드러운 접근이 범인에게 자백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작년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성폭행살해범, 김길태의 자백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그가 자기는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증거능력은 되지 않았고. 그런데 프로파일러와 이야기 도중 “시간도 흘렀으니, 맘 놓고 얘길 하라”고 하자 울면서 “제가 다 했습니다.” 한 것.

오래된 코미디 중에 ‘양반인사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무식한 사람들이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유식한 사람처럼 위장하기 위해 각기 양반자리를 돈 주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양반들이 하는 까다로운 ‘인사말’이 영 불편해 결국 서로의 신분이 드러나고 만다.

잭 니클라우스는 타이거우즈가 자신의 우승 기록을 넘을 거라고 하는데, 그가 아직 영 예전의 감각을 못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수가 시원찮아서가 아니다. 경기 도중 그린 위에 무심코 침을 뱉지 않던가 말이다. 잘 안 풀려서 초조하다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표시이다.

속마음은 나도 모르게 드러나기 마련이니 감추고 싶걸랑 극도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 듣지 못하셨나?

괜히 마누라가 남편에게 묻는다. “내가 먼저 죽으면, 그 때 어떡할 거야? 재혼할 거지?” 남편 “쓸 데 없는 소리! 다른 여자랑 어떻게 살아?” 떠보는 마누라 “결혼해서 사는 게 낫잖아?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TV에 한 눈 팔던 남편 무심코 “응,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호기심 발동 마누라 “재혼을 바로 하겠네?” 귀찮은 남편 “알았어. 재혼하지 뭐!” 삐친 마누라 “진짜?” 남편, 채널 돌리다가 못 알아듣고 “그래…”

열 받기 시작한 마누라 “우리 침대에서 딴 여자랑 자? 그리고 내가 입던 옷도 입히겠네?” 귀찮아진 남편도 농담 삼아 받아친다. “뭐 그렇게 되지 않겠어?” 극도로 화 난 마누라 “내 골프채도 그 X이 쓰겠네?” 역시 무심코 대답이 튀어나오고 마는 남편 “그 건 안 돼! 그 여자 왼손잡이야”

폭발한 마누라 “딱 걸렸어! 어떤 X이야? 이름 댓!!”
겨우내 눈에 가려졌던 것들이 스스로 드러나고 있다. 봄이 오긴 왔나보다.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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