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칼럼 - 삶의 뜨락에서

TBC는 1980년 11월 30일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조치로 KBS에 강제 흡수됐다. 그날 밤 TBC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진행자 황인용 아나운서는 11시부터 자정까지 올드랭사인과 무거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울음을 참아가면서 고별방송을 했다.

TBC ‘밤을 잊은 그대에게’ 황인용씨
파주서 음악감상실 ‘카메라타’ 운영
1930년대 빈티지 제품 스피커 통해 
7년간 디스크자키 하며 실내악 해설

“TBC 동양방송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황인용입니다. 그동안 TBC를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신 여러분! 이제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앉았습니다. (…) 탄생의 목소리와 죽음의 목소리는 왜 이리 차이가 나는지요? 다시는 종말의 소리가 없어야겠습니다. 애청자 여러분! 동양방송 17년 역사가 오늘밤 자정을 기해 막을 내립니다. (…) 남은 5분이 야속합니다. 10분이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여기는 639 킬로헬즈 HLKC 동양방송입니다.”

1967년 TBC 3기 공채아나운서로 방송인이 된 황씨는 1970~80년대 팝송 DJ로 이름을 날린 ‘라디오 스타’였다. TBC가 없어진 후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방송 등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말로만 듣던 탄노이 턴테이블과 쿼드 앰프도 이 무렵에 샀다. 오디오 마니아의 시작이었다. 황씨는 여유가 많아 오디오와 음반들을 모은 것이 아니다. 1974년 방송의 날에 ‘대한민국 아나운서상’ 상금 20만 원으로 금성사의 스피커 두 개짜리 오디오를 샀을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TBC 시절, 모 언론사의 주필이 황씨의 집에 전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방송국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네 대표 아나운서의 집에 전화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을 정도로 궁핍했다.

1995년에는 MBC 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방송사 일이 크게 줄었다. 2004년 TBS(교통방송) ‘황인용의 마이웨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같은 해 9월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에 ‘황인용의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를 세웠다. 파주는 그의 고향이다.

Camerata는 이탈리아 말로 ‘작은 방’. 지난 7일 카메라타에서 황씨를 만났다. 그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클래식의 선율 속에서 산다. 주말에는 유명연주자를 초청, 실내악 연주회를 열고 곡 해설도 한다. 인터뷰 중에도 턴테이블에 새 음반을 올려놓고 화이트보드에 곡명과 작곡가를 써놓는 모습이 곰삭아 보였다. 평생 한 장 한 장 모은 LP음반이 1만5천여 장에 달한다. 홀의 전면은 고풍스러운 대형 스피커 두 개와 앰프로 장식됐다. 1930년대 빈티지 제품들이다. 한 개는 무성영화시대 미국 극장에서 사용하던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 클랑필름의 시스템이다. 십 수 년에 걸쳐 모자이크 하듯 형편에 맞춰 부분적으로 구입해서 짜 맞춘 것이어서 더욱 가치있어 보였다.

서너 시간마다 임무교대하는 ‘골동품’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 슈베르트가 환생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연필과 메모지, 연필깎이가 놓여있다. 250년 역사의 독일 필기구 브랜드 파버카스텔의 연필로 신청곡을 써내면 틀어준다. 요즘에는 재즈곡도 이따금 내보낸다. 카메라타는 헤이리에서도 독특한 건축기법이 돋보인다. ‘집으로 시를 쓰는 건축가’로 불리는 조병수 씨(54)가 설계해서 2004년 한국건축가협회상과 미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콘크리트에 덧칠을 하지 않은 네모난 건물의 오른쪽이 음악감상실이고 왼쪽은 살림집이다. 황씨는 “손님 모두가 소중하고 고맙지만 클래식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7순의 디스크자키 황인용 씨의 클래식 사랑은 끝이 없어 보였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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