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일보사와 일본의 제휴사인 요미우리신문은 한일 교류좌담회를 공동 개최했습니다. 1999년 가을부터 양국을 오가며 여섯 번 연 좌담회는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요미우리 사람들과 협력해 일하는 동안 우리는 그들의 치밀한 준비와 세심한 배려에 놀랐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측의 준비는 늘 성글었습니다. 행사 후의 회식도 우리는 서열에 맞게 대충 앉으면 된다는 식이었지만, 그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음식점이 방석집이냐 의자에 앉는 집이냐, 좌석 배치도는 어떻게 되느냐, 시시콜콜 따지고 행사 직전까지 확인, 또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데도 막상 행사가 열리면 우리측도 별 무리 없이 진행을 잘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차질이나 돌발사태에 대응하는 임기응변도 그럴 듯했습니다. “왜 그렇게 세밀하게 준비를 하느냐”고 그들에게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당연한 일 아니냐”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합쳐 그 중간쯤 되는 사람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까지 세 나라 사람을 함께 생각해 보면 한국사람들이 중간입니다. 10여년 전 한국일보 요미우리 중국의 런민르바오가 공동 개최한 동북아 3국 세미나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시간에 중국인들 좌석은 시끄럽기 짝이 없고 일본인들 좌석은 조용하기 짝이 없고 한국인들 좌석은 정확히 그 중간이었습니다.

한국일보사 예방 때도 일본인들은 시종 정숙하게 행동했지만, 중국인들은 안내도 하지 않은 옆 방에 들어가 그림이 어떻고 의자가 어떻고 그러면서 떠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서로 다를까 싶었습니다.

유례없는 3ㆍ11 대지진으로 일본은 지금 재탄생이냐 침몰이냐의 큰 기로에 섰습니다. 대재앙의 모습은 그야말로 滿目愁慘(만목수참),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시름겹고 참혹합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대응하며 남을 배려하는 ‘메이와쿠오 가케루나(迷惑を掛けるなㆍ폐를 끼치지 말라)’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회의와 우려가 안팎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큰 재앙에도 그렇게 차분한 태도는 ‘운명이니 어쩌겠나’하는 체념과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을 극복하고 재기하는 역동성도 우러나기 어렵습니다. 도쿄의 한 재일동포는 아무도 지진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침묵이 무섭다면서도 장래를 생각할 때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정치 리더십이든 일반 국민이든 젊은 세대든 최근 일본에 부족한 것은 역동성과 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을 큰 컵에 넣고 나오지 말라고 하면 남의 어깨를 밟든 엉덩이를 받쳐 주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죄다 밖으로 기어 나온다고 합니다. 반면 일본인들은 접시에 둥글게 선을 긋고 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면 그대로 있는다는 것입니다. 또 골프가 잘 안 되면 미국인들은 책을 읽으며 연구하고, 일본인들은 연습장에 가는데, 한국인들은 골프채를 확 바꿔 버린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지금 이렇게 채를 바꾸고 판을 새로 짜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 소리 내서 대성통곡도 하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웃에 폐를 끼치고 신세를 지기 바랍니다. 흠씬 얻어맞은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 거리낄 게 없고, 기꺼이 남의 신세를 진 사람은 나중에 갚기도 그만큼 잘 갚는 법입니다.

지금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거리낌과 구김이 없는 기분이며 한사코 가라앉지 않고 까부라지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칼럼그룹 제공> /임철순 한국일보 주필

필자의 다른 글 보기
http://www.freecolumn.co.kr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