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영재 양성기관인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1월 이후 석 달 새 학생 3명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살이 잇따르자 과도한 학업 부담과 경쟁 스트레스가 주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런 터에 직전 두 학기의 성적이 평점 3.0 미만이면 0.01점당 6만원 가량을 내야 하는 차등 등록금제의 부담까지 더해졌습니다.

대학 측은 그러나 자살한 학생들이 이 제도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살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이유로 목숨을 끊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삶을 마감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복수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죽기 전에는 주위에 나를 구해 달라는 SOS신호를 다양한 형태로 보낸다고 합니다. 그걸 잘 알아채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구명 사인을 해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사연이 참 많았습니다. 몇 명의 사연과 그에 대한 반응·처방을 살펴봅니다.

■중 1 여학생=부모가 이혼해 엄마, 여섯 살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엄마가 이유 없이 화를 내고 너 같은 건 필요 없다, 아빠한테 가서 살라고 해서 빨리 이 세상 떠나고 싶다. 잠깐 아프다 쉽게 죽는 간단한 방법 없나.

이에 대해 “나는 고아로 너보다 더 힘들지만 내 인생에 끼어들고 해를 준 인간들에게 복수하려고 죽지 않고 산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30세라는 네티즌은 “지금 너 하나 죽어야 슬퍼할 사람 100명도 안 된다”며 최선을 다해 보지 않고 벌써 죽으려 하느냐, 기운 내라고 격려했습니다.

■해외 국제학교에 다니는 중 3학생=초등 6학년 때 외국에 왔는데 아직도 영어 초보반인 EAP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ㅅㅂ년(어머니)이 너 같은 건 뒈져라, 쓰레기나 짐승보다 못하고 살 가치가 없다며 온갖 욕을 한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4년 동안 2억원을 썼다. 어머니는 키 크고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는 내 친구와 나를 매일 비교한다. 죽고 싶다.

이 글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진지하게 상의하라(함께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징징대지 말고 엄마에게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고, 엄마가 너무 심하게 대해 힘들고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솔직히 말하라는 충고가 읽을 만했습니다.

■중 1학생=부모가 이혼하고 동생은 미쳤고 초등 6학년 때부터 자살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학교 집 할머니집 고모집 어디 가도 편한 느낌이 없다. 이번 주 안에 세상 뜰 거다.

이에 대한 답변 중에서는 욕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야이 십셰끼야 죽긴 왜죽어 개새꺄. 중 1에 자살이면 난 시발 지금 제일 졷같은 고3이다 개새꺄. 난 벌써 요단강 수영해서 건넛겠다.” 이렇게 욕부터 한 고3은 두 가지 처방을 내렸습니다. 1)죤나 열심히 행복하게 살기. 인생 한 번 사는 거 시발 재밌게 2)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게 좋다.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게 북한 김정일 김정은 부자 모가지 따그라.

이 글을 읽으며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그러는 사람에게는 이런 처방이 오히려 나을지 모릅니다.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고통이 훨씬 더 컸던 사람의 말이 가장 좋은 충고가 될 수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사람에게 나라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도 청소년기에 자살 욕구를 넘긴 적이 있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더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살기 싫어 자살하고, 어른들은 살기 힘들어 자살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슬그머니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임철순 한국일보 주필<자유칼럼그룹 제공>

필자의 다른 글 보기
http://www.freecolumn.co.kr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