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기획재정부의 뿌리는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다. ‘세계화’에 몰두해 있던 YS정부는 1994년 두 부처를 통합했다. 주요 정책수단을 한 군데 모아놓으면 효율과 시너지가 높아질 거라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탄생한 재정경제원은 예산 조세 금융 외환 등 모든 거시정책수단을 독점한 말 그대로 ‘공룡부처’였다.

하지만 파워가 커지면 교만해지고, 몸집이 불어나면 굼떠지는 법. 재경원은 환란을 막지 못했고, DJ정부는 이 거대조직을 해체해버렸다. 부총리급 재경원은 장관급 재경부로 격하(이후 재격상)됐고, 예산과 금융은 신설된 기획예산위원회(이후 기획예산처)와 금융감독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로부터 10년 뒤. MB정부는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를 다시 합쳤다. 물론 정책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였고, 대신 ‘작은 정부’에 맞게 격은 장관급으로 떨어뜨렸다. 지금의 기획재정부다. 합쳤다가 쪼개고 다시 합치고, 직급을 낮췄다가 높이고 또 낮추고. 그 일만 되풀이하며 17년이 흘렀다. 나름 ‘최적’을 찾는 과정이었지만, 경제관료들의 평가는 백이면 백, 한결같다.

어떤 그림을 그려도 옛 기획원과 재무부 쌍두 체제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한 전직장관은 “기획원과 재무부 때는 서로 협력과 견제가 가능했지만 두 부처가 합쳐지면서 그게 없어지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사례2. 재경원이 해체됐던 1998년, 금융 쪽에선 은행·증권·보험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이 통합됐다. 금융감독원이 탄생한 것이다. 칸막이가 사라지는 현대 금융의 흐름상 감독기구 통합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조치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독점이 사단이었다. 금감원은 한국은행이든 예금보험공사든, 눈곱만큼의 권한 분산도 허락하지 않았다. ‘시어머니(감독기관)가 많아지면 며느리(금융사)만 피곤해진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누구와도 밥그릇을 나누고 싶지 않은 권력중독증세였다. 만약 정부가 통합만 시킬 것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 장치도 마련했더라면, 부산저축은행 사태 같은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례3. 경계가 사라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합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건 십수년 전. 그러나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했던 두 공기업의 통합(토지주택공사·LH)을 이뤄낸 건 분명 MB정부의 개가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100조원이 넘는 빚을 어떻게 줄여나갈지, 또 본사는 어디로 옮길지는 하나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합치기만 했을 뿐이다.

개인의 결혼도 각자 문제를 해결한 다음 식을 올려야 원만한 가정이 꾸려지는 법인데, 하물며 서로 원치 않았던 두 조직을 강제 합병하면서 “산적한 문제들은 살아가면서 풀라”고 한 것은 정말로 무책임한 일이었다. LH는 지금도 부채에 짓눌려 온갖 사업들을 다 취소하고 있고, 뒤늦게 경남 진주로 결정된 이전지역 역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례 4. 어쩌면 현 정부 ‘통합’시도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가 될 수도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산은금융지주. 정부 소유의 이 두 금융지주사를 합쳐, 국내에서 가장 클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덩치로 이름을 내놓을 수 있는 초대형은행을 만든다는 메가뱅크 구상이 마침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로선 분명 매력을 느낄 만한 아이디어다. 단번에 세계 50위 언저리의 은행을 만들 수 있는데, 더구나 선진금융의 필수품인 투자은행도 만들 수 있는데, 원전 같은 대형수주도 한결 용이해질 것 같은데, 그럼으로써 금융주변국의 콤플렉스를 한 방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데…. 이 유혹을 떨쳐버리기란 쉬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책 결정권자들은 손에 잡힐 듯한 메가뱅크의 꿈을 향해 달려가기에 앞서 딱 두 가지만 자문했으면 한다. 과연 무리하게 합쳐서 성공한 적이 있었나. 우리금융도 산은금융도 모두 정부회사이기에 앞서 금융회사인데, 과연 금융이 정부 손을 타서 잘된 적이 있었던가. /이성철 한국일보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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