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가 끝없는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금감원의 고위직 출신이 전관예우의 차원에서 금융기관 감사로 대거 자리를 옮기는 것이 화제가 되더니 그 불길은 급기야 감사원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아직 수사 중이어서 비리의 줄기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모르지만 현재까지 검찰에서 밝혀진 비리 의혹의 하이라이트는 현역 감사위원의 비리 개입이었습니다.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비리 의혹이 흘러나오고 검찰수사를 받고 곧바로 긴급 체포되는 광경은 뜬금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세상이긴 하나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마 은 전 감사위원의 비리 의혹이 일반인들에게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그의 전력이 한 몫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덕진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현역 정치인과 검찰 고위 간부에게 줄줄이 쇠고랑을 채워 감옥으로 보낸 소위 ‘모래시계’ 검사들 중 한 사람이 이제 부정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되었으니 인생유전이라는 관점에서 더더욱 매스컴의 풍자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검찰에 출두한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50세의 젊고 핸섬한 얼굴, ‘모래시계’ 검사의 상징성, 거기다 감사위원의 직책을 갖고서 돈도 그렇지만 물방울 다이아몬드 같은 금품에 눈이 멀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까지 꿈꾸었기 때문에 그 야망도 컸을 텐데, 그렇다면 사리판단이 그렇게 흐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원은 헌법기관입니다. 우리 헌법은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그 업무를 규정하고 있고 11명의 감사위원은 헌법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헌법이 감사위원의 무게와 권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 ‘감사원’과 ‘감사위원’이란 말만 떠올려도 근처에 비리와 관련된 사람은 범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원도 사람이 일하는 곳이니까 오류도 있고, 규정을 어길 수도 있겠지만, 뇌물을 받고 일을 보아주는 그런 비리는 없는 맑은 곳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모래시계’ 검사 은진수 씨의 이력으로 보면 나이가 젊기는 해도 감사위원이 맞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검찰을 떠났어도 변호사 시절엔 부패방지위원과 국가청렴위원을 지냈습니다. 어쩌면 감사위원을 위해 이력을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경력입니다.

그런데 은진수 씨가 감사위원을 맡기엔 위험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큰 역할을 했고, 국회의원 꿈을 실현하려 정치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감사위원이 됐을 때 그는 보다 겸손하게 자신의 운명을 관조하며 그 직책이 주는 사명감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 크고 혼탁한 정치의 세계를 더 많이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듯이 은진수 감사위원의 비리의혹은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의 전형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듯합니다. 감사원의 명예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고 봅니다. 나는 언론이나 야당에서 떠들어대듯이 감사원이 비리로 얼룩졌을까 하는 의문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여론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은 것이 인간사입니다.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의 할 일과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더라도 공직 윤리에 대한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권력의 무상함을 알고 공직의 존엄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좋은 머리로 그렇게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을 가져봅니다.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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