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주고 싶다!’
작년,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지휘했던 박칼린이 얼마 전 무슨 케이블TV 오디션을 심사하다가 한 참가자에게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한심한 참가자였길래 “뭐는 잘했는데, 뭐는 못해서 탈락입니다” 혹은 “앞으로 열심히 하면 더 좋아질 겁니다. 안타깝습니다”라는 그저 그런 ‘체면 세워주기용’ 심사평조차 듣지 못하고 대뜸 ‘패주고 싶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며칠 전 늦은 밤에 우연히 그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가 ‘패주고 싶다’는 말을 들을만한 사람을 여럿 보았습니다. 동네 노래자랑은커녕 학급 학예회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탤런트(재능, 장기, 특기)’라며 무대에 올라 괴기하게 몸을 뒤틀고 침을 튀기며 악을 써대는 모습을 보니 ‘패주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 것이지요.

왜냐고요? 무엇보다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행동을 해서입니다. 혼자만 재밌고, 혼자만 신나는 재주면 혼자 즐기거나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 앞에서나 보일 것이지 그걸 재능이라고 중인이 환시하는 무대에 들고 올라온 건 뻔뻔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가족이나 친구들도 그걸 보고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의 한심한 퍼포먼스를 보고 ‘패주고 싶다’고 생각만 했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그 무대에 올라왔을 수도 있겠습니다.)

뻔뻔스러움을 지켜보게 하면서 시간을 낭비시킨 것도 패주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늦은 밤에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이번엔 뭔가 재미난 걸 보여주겠지’하며 기다린 사람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으니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는 것이지요. 돈 받고 심사위원으로 참가했겠지만 박칼린인들 정말로 재능이 넘치는 무대를 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탤런트’는 고사하고 ‘택(턱)도 없는 사람’들이 무대만 어지럽히고 있으니 ‘그냥 패주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패주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너무 많아서 우리가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뻔뻔스럽고 몰염치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괴로움을 안겨주는 사람들이 온 사방에 넘쳐나기 때문에 생각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한번 읊어볼까요. 얼마나 많은지. <부산저축은행에서 돈 해먹은 사람들, 그래서 서민들 몇 달째 몸부림치고 통곡하게 만든 사람들, 하청업체 후려치고 향응 받아먹은 사람들, 산하기관 돈 뜯어 룸살롱 갔다는 공무원들, 약사들 눈치 보느라 슈퍼에서 감기약도 못 사먹게 하는 또 다른 공무원들,

깊은 생각 없이 등록금이 비싸니 깎아야 한다고 말했다가 수습도 못하는 여야정치인들, 그걸 기회로 촛불시위 또 일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이비 정치인들, 멀쩡한 남의 아들들 군대에서 전염병으로 비명횡사하게 한 군 당국, 산지 한우 값은 내려가는데도 고기값은 올려 받는 식당주인들, 6년간 함께 공부한 여자동급생이 술 취하자 성추행하고 옷 벗겨 사진 찍고 나는 안했다고 발뺌하다 구속된 ‘명문’ 사립의대생들, 말 못하는 누렁이를 각목으로 마구 ‘패’ 한쪽 눈이 빠져나오게 한 야만인!…>

이 모두가 패주고 싶은, 아니 그냥 패주고 싶은 게 아니라, ‘비오는 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먼지가 나도록 패주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내일 신문이나 저녁 TV뉴스를 보면 또 이만큼 쌓일 것입니다. 패주고 싶은 사람들이!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패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뻔뻔스럽게 박칼린이 한 마디 한 것을 가지고 뻥튀기를 하여 귀중한 지면을 낭비했다는 이유 아니면, 패주지도 못할 사람을 패주고 싶다고 뻔뻔스럽게 계속 큰소리를 쳤다는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꼭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