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은 원래 20년 전 줄리아로버츠가 출연했던 영화 제목. 그런데 최근 국내 영화가 또 이 제목을 쓴 영화를 내놨다. ‘적과의 동침’은 어느덧 원래의 뜻과는 좀 다르게 바뀐 보통명사가 됐다. 마음은 극과 극이지만 어쩌다 상대와 임시로 휴전을 하고 협조를 하는 모양을 말한다.

우리는 보통 싫은 사람과는 절대 골프라운드는 안한다. 그런데 지금 말할 이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크게 다르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사사건건 서로를 비난하는 사이인데 골프를 함께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아 감탄을 했다. ‘과연 그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그린 위에서 짧은 거리임에도 “오케이 바라지 말고 마크해!”라 외치는 말의 주인공,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연방 하원의장이 얼마 전 워싱턴 D.C. 외곽 앤드루 공군기지에서 맞짱골프를 친 것. 파트너로 각 1명씩을 대동했는데, 오바마는 바이든 부통령을 베이너 의장은 공화당 소속 케이식 주지사를 각각 동반했다지.

골프 좋아하는 미국인들인데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요즘 재정적자 축소와 정부부채 한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격돌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4대강사업, 중수부 존폐...로 목소리를 높이듯 인신공격까지 해대는 그들의 신경전도 어느 나라 정치판보다 더 사납다.

다만, 우리처럼 문 걸어 잠그고 날치기를 하거나 주먹다짐, 공중부양만 하지 않는다. 암튼 그들이 의사당 아닌 필드서 뭉쳤다. 참 멋지다. 선진국 사람들답다. 실제로 그들의 골프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지.

하얀 셔츠와 야구 모자를 쓰고 나온(골프모자가 없었나?) 오바마 대통령은 바이든 부통령이 5미터 이상의 긴 퍼팅에 성공하자 취재진들을 돌아보면서 “캬아~ 빠따 죽이시네. 저 장면, 사진 찍어요!”(오버하기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작 오바마는 뒤이은 원 퍼트에 실패, 다음 짧은 파 퍼트에 성공, 이때 베이너도 “오예!!”라는 고함을 질러(역시 서로 오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서양인들의 폼 나는 또 다른 ‘적과의 동침’도 잘 안다. 1914년 12월 24일 영국군과 독일군은 조금 전까지 총을 쏴대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는 캐롤을 부르며, 참호 속에서 나와 서로 담배도 바꿔 피우고 맥주도 함께 마시는 크리스마스 휴전을 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다르다. 베트남전 때는 ‘구정대공세’라고 즐거운 음력설날에 상대에게 더 포탄을 퍼부었으니 쯧쯧~!

골프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이전 생애에 부부였나 싶을 정도로 바로 엄청 친해질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반나절을 이야기 나누지, 2끼의 식사 함께 하지, 벌거벗고 목욕까지 하는데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오바마 VS 베이너 전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걸 바라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부럽기 그지없다.

사실 예전에 이 김 작가도 무슨 일로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와 같은 조로 라운드를 한 적이 있었다. 모임에서 우리 모르게 그리 짜둔 것.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처음엔 서먹서먹하여 같은 조로 묶은 총무를 무지 욕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둘은 그 라운드 때 서로에게 멀리건을 두어 개 이상씩을 주고 퍼트 컨시드도 팍팍 주면서 구원(舊怨)은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자, 다음 라운드 때는 원수나 경쟁자와 라운드를 해보시라. 운동도 하고 화해도 하고, 분명 1석2조 효과 보나니.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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