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권·공정성 등 발주기관 내 ‘갈등’
현행 발주제도론 글로벌 경쟁력 힘들어
구태관행 탈피하고 게임의 룰 혁신해야

정부의 재정건전성 제고 방침에 따라 SOC투자 순위가 밀려 공공공사 물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음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물량이 줄어드는 것과 별개로 시장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 지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채산성보다 수주가 우선인 환경 때문이다.

어떻게든 입찰에 참가해 먹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 업체들의 고민인 반면, 공공발주기관들이 체감하고 있는 내부 갈등 또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보인다. 최근 공공기관들이 겪고 있는 내부 갈등을 짚어보고 시장에 어떤 영향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해 본다.

중앙정부인 A는 발주자 재량권과 투명성, 공정성 확보 등에 관해 갈등하고 있다.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확정한 기본 원칙은 발주자에게 책임성과 재량권을 동시에 주는 방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부서에서는 발주자 재량권이 커질수록 낙찰자 선정에 기관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발주자 중심 원칙과 반대로 중앙기구에서 발주자 권한 일부를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갈등하고 있다. 또다른 중앙정부 B는 턴키제도에 대해 전혀 상반된 의견으로 갈등하고 있다. 턴키는 높은 낙찰률로 인해 국고를 낭비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사후 설계변경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 사업비면에서 오히려 국고가 저감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입찰시점과 완공시점에서 보는 잣대가 다른 갈등이다.


지방자치단체인 C의 경우다. C 기관장은 관할 구역에서 발주하는 모든 공사를 관할행정구역 내 소재기업에게 수의계약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현행법에는 전문공사는 1억, 종합공사는 2억원 이하로 상한선이 명시돼 있다. C기관 소속 공무원은 이를 해결하려면 초법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리가 빈약함을 호소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인 D의 경우는 더 노골적이다. D 기관장은 관할 구역 내 모든 공사에 입찰참가 조건으로 관할행정구역 내 소재기업들에게만 자격을 부여하고 심지어 근로자까지 해당지역 주민만 투입할 수 있도록 조례개정안을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다.

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은 이러한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기존법과 형평성, 그리고 사후관리에 대한 책임의 불확실성 등으로 상당한 갈등 중에 있다.

공기업인 E는 품질과 안정성확보를 위해서는 첨단공법과 적정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함에도 불구 300억원 이상은 최저가낙찰제가 강제돼 있어 입·낙찰방식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 첨단설비시공에 최저가낙찰제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외부기관에 용역을 발주했다.

문제는 현행법으로 용역 자체도 공개입찰을 통해 최저가낙찰제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최저가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저가낙찰제 자체가 걸림돌이 되는 갈등을 실감한 것이다.

공공기관인 F는 내부 역량 보완 방향을 찾아내기 위해 외부전문기관에 연구용역 발주를 준비했다. 문제는 F가 확인한 해외 사례를 보면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소요되는데 연구가 아닌 컨설팅성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학술연구 혹은 연구용역 모두 현행 대가 기준으로는 외국사례에서처럼 질 높은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을 내고서도 진행시킬 수 없는 게 E와 F기관 모두 사후 감사에서 무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두 기관 모두 공감하는 갈등 상황이다.

공공건설에서 잇따라 혁신을 성공시키고 있는 영국의 사례로 국경위가 확정시킨 건설산업선진화방안도 발주제도와 발주자 역할 혁신에 상당한 무게를 실었다. 건설산업은 수주사업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문자인 발주자가 똑똑해져야 공급자인 업체들의 역량도 동시에 올라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영국건설혁신센터는 ‘공급자는 절대 주문자의 눈높이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발주제도 혁신과 발주자 역량 강화 등 수요자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처음에는 민간주도로 시작했지만 영국감사원에서 혁신이 필요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부터 공공이 주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국내도 참고할 만하다.

발주제도 및 발주자 역량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국내시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내수시장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대체시장으로 해외시장을 꼽고 있다. 국내용 입찰제도로는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들다. 글로벌시장은 게임의 룰도 글로벌화 되어 있다. 내수시장이 과거 습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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