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지원인제도를 만드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었습니다.

국회는 3월 10일 법사위에서 이 법안을 단숨에 처리하고, 바로 그 다음 날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시켰습니다. 변호사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 여론이 일었습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 같은 낌새를 비쳤습니다.

4월 1일 법안이 정부로 넘어갔습니다. 여전히 비판 여론이 언론지면을 채웠습니다. 오직 변호사단체만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이 거부할 것 같던 분위기가 며칠 사이에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그대로 시행하되 시행령에서 적용 범위를 조정하겠다고 태도를 바꿨습니다. 4월 12일 국무회의를 끝내 통과했습니다.

이제 내년 4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옵니다. 만약 변호사 관련 법안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기업에서 반대하고, 언론에 비난 논평이나 기고문이 넘치고, 청와대에서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 같은 낌새를 내보였을 정도로 반대나 비난이 심한 제도입니다. 다른 법안이었다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어쩌면 이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었을까요?

이 법은 그렇게 서둘 필요도 없었습니다. 기업이 애타게 요구한 법안도 아닙니다. 여야가 생각차이로 다투다가 합의 처리하기로 한 법안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바로 다음 날 본회의를 통과할 정도로 거침없이 진행됐습니다.

법 개정작업에 관여해 본 사람이라면 국회 문턱이 높은 것을 압니다. 힘이 없는 사람에겐 법안이 아무리 옳다 해도 입법 발의,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까지 통과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청목회 사건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은 처우를 조금 개선해 달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는 법안을 내고 국회의원을 설득하러 뛰어다녔던 일이 드러난 사건 같습니다. 남들에게는 그렇게도 힘든 일이 변호사와 관련되면 저렇게 쉽습니다.

정부에는 법무부와 법제처가 지키고, 국회에선 각 상임위에 변호사 출신 의원이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변호사 영역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 싶으면 법사위에서 떡 막습니다. 민간에선 변호사단체가 버팁니다. 변호사단체장 선거를 할 때면 각 후보는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이번 준법지원인제도는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변호사 일자리 만들기 작업입니다. 변호사 수가 많아지고,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어 내년부터 변호사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어 외국 자본과 인력이 들어올 법률시장개방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앞날을 걱정하는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만합니다. 변호사 관련 직역(변리사 세무사 노무사 관세사 등)을 변호사와 통합하는 방안을 토론할 때, 변호사가 많아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변호사와 다른 전문가의 동업허용방안을 토론할 때에도, 변호사단체는 변호사가 힘들다는 이유를 댑니다. 이번 일도 그런 연장선에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변호사가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변호사법에 보니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변호사는 인권, 사회정의, 사회질서 유지, 법률제도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번 준법지원인제도를 만드는 것이 변호사 사명을 실천하는 것에 걸맞은 제도입니까? 이것이 진정 기업을 위한 제도입니까?

변호사도 먹고사는 문제를 가벼이 할 수 없죠. 그렇지만 온 국민에게 변호사가 먹고사는 문제를 떠넘겨선 곤란합니다. 법이나 제도를 변호사를 위해 고쳐서는 안됩니다. 이 나라는 국민을 위한 나라여야 합니다. /고영회 칼럼니스트·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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