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촌 로터리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푹푹 찌는 무더운 바깥 거리와는 달리 2층 실내가 시원했습니다. 천정에 설치한 에어컨이 서늘한 공기를 실내에 뿜어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카페의 창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에어컨을 가동할 때 창문을 닫아 냉각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냉방 상식인데, 이 카페는 창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밀폐된 방을 그대로 두고 냉방 장치를 가동하면 공기가 순환되지 않아 손님을 불쾌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초여름에 인사동에서도 에어컨을 켠 채 카페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게 요즘 카페의 냉방 패턴인지 모르겠으나 전기료가 굉장히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젊은 세대의 삶의 방식이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는 반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카페에 앉아보면 정부가 권장 실내 온도를 정하고 방문을 닫게 하는 기존의 냉방 패턴은 케케묵은 방식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후덥지근한 여름에 냉방도 잘되고 공기 순환도 잘되는 카페나 업소가 있다면 젊은 사람뿐 아니라 나이든 사람이라고 그곳을 피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내가 있는 11층 빌딩의 기계실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지하의 2개 층을 꽉 메운 냉 난방기와 전기 기계 시설이 굉음을 내며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마치 큰 배의 기관실을 연상케 했습니다. 이 모든 시설의 동력원은 전기와 가스입니다.

11층 건물이라면 서울 시내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작은 빌딩입니다. 공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서울 시내의 그 많은 빌딩과 아파트 지하실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계 시설이 쉴 새 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며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의 불야성은 전기 소비의 작은 부분에 속할 것입니다. 아파트에 입주한 한 가정의 에너지 사용만 생각해 보다도, 방을 밝히는 조명에 쓰는 에너지는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에어컨이나 냉장고 같이 실내를 꽉 메운 전기 전자제품이 눈에 보이지 않게 소비되는 전력량이 훨씬 많을 겁니다.

현대 도시 문명은 철저히 전기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재 전기 문명의 극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서울 땅바닥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게다가 역사(驛舍)와 열차 안을 시원하게 유지하는 지하철은 전기 문명 그 자체입니다. 서울의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쇼핑센터는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마비되어 버릴 것입니다. 만약 서울에 24시간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면 쇼핑센터나 백화점만 아니라 도시 자체가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화력발전소로 충당할 수 없어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늘려나가는데도 전력예비율이 낮아 안전한 전기 공급에 위협을 받습니다. 10년 전보다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두 배나 늘어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에 깊이 중독되어 있습니다.

절제와 절약은 옛날에 쓰던 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석유 고갈이 심각히 대두되는 시대에 살면서도 에너지 문제에 대한 걱정이 국민 정서에는 희박한 것 같습니다. 인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에너지 과소비와 지구온난화의 악순환에 빠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구가 더워지니 이에 적응하려고 전기를 많이 쓰게 되고, 전기를 많이 쓰니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여 지구온난화가 더 빨라지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에어컨을 켜는 우리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전기 문명의 불길한 미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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