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진 않지만, 결혼식 축의금으로 자그마치 1000만원씩이나 오가고 있다 합니다. 축의금 봉투 하나에 들어 있는 금액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대기업 임원들이 자녀를 결혼시키는 경우 하청업체나 납품업체에서 이처럼 거액을 넣어 건네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밉보이게 되고 결국 거래를 끊기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축의금을 빙자한 상납이며, 뇌물입니다.

비록 일부에 국한된 얘기라고 해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갑을 관계’의 극명한 현주소입니다. 계약을 주고받는 불가피한 관계 속에서 이렇게 비리가 움트고, 부정이 활개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우월적인 지위를 내세워 부적절한 요구를 해오는 경우도 있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거나 아니면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려고 스스로 알아서 처신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갑을관계에 있어 이러한 먹이사슬은 이미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저축은행 내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감독관청 관계자들이 금품을 받고 비리를 키웠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함께 공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축은행의 경영상태를 평가하는 회계법인도 그것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선량한 예금주들만이 엉뚱하게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갑과 을의 계약이 일방적인 약육강식의 형태에서 더 나아가 공생관계의 먹이사슬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억울하게 뜯기고 갖다 바쳐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주고받는 과정에서 대체로 같은 패거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돈을 받는 쪽이 문제가 있다면, 주는 쪽이라고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가 결혼식에 1000만원의 축의금을 낸다면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계약서를 쓸 때 그만큼의 이익을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혹시 계약 자격에 문제가 있더라도 눈감아 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케이크 상자나 사과상자에 돈다발을 넣어 전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계약이 체결됐을 경우 회사에 미치는 손해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기술과 가격조건이 아니라 돈뭉치에 의해 계약이 성사됐다면 납품 물건이 성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갑을관계의 상납구조도 다양하게 짜여 있습니다. 룸살롱의 질펀한 술자리가 그렇고, 골프장의 접대내기가 그렇습니다. 법인카드를 사용하도록 제공하거나 거래 금액에 따라 리베이트를 지불하는 방법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휴가철에는 가족들의 해외여행비까지 대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결혼식 축의금은 오히려 약과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부패구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으로까지 문제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연달아 그룹 내부의 부정부패를 언급했을 정도입니다. 각종 청탁을 앞세운 정치권이나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관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자체에 청탁 돈봉투를 갖고 오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단체장 사무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했다지요. 함바사건에 이어 4대강 공사를 둘러싸고도 공직자들의 거래관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한두 사람의 청렴의식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정신이 필요하다거나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도 이미 사회적인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제시되곤 했지만 공염불일 뿐입니다.

오죽하면 축의금에 세금을 물리거나 뇌물죄로 처리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을까요. 이러다가는 정말로 결혼식장 접수대마다 세무서나 검찰 직원들이 지키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갑을관계의 은밀한 거래가 쉽게 근절되지는 않을 겁니다. /허영섭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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