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입찰·낙찰·계약’ 4단계는 밀접 연관
 별개로 인식하면서 비효율과 오해 생겨
 외국 게임룰과 같지 않아도 호환은 돼야

인류가 만든 3대 법전 중 하나인 함무라비법전 282조항 중 건설서비스거래에 대한 내용도 6개 조항이 들어 있다. 법전에 따르면 3800년전에는 마스터빌드(건설업체)와 주인(발주자)간 거래를 지금의 ‘턴키방식’으로 정립해 놓았다.

거래방식과 함께 대가기준을 정립해 놓았다는 것도 주요한 시사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거래방식과 거래금액이 반드시 함께해야 함을 명시해 발주자와 계약자 사이의 권한과 책임에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말 건설산업연구원이 100명의 CEO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이상이 내수시장이 침체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시장이 침체되는 것과 별개로 국내 건설산업의 당면과제 중 첫 번째로 해결돼야 할 과제로 입·낙찰제도 개선(23.3%)을 꼽았다. 1958년에 제정된 거래법(현 국계법)에 대해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입·낙찰제도의 개선을 주장하기에 앞서 건설공사 발주제도 전반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건설공사의 발주사이클은 ‘발주·입찰·낙찰·계약’ 등 4단계가 핵심이다. 발주는 거래할 대상, 즉 설계와 시공, 관리 등에 대한 통합 혹은 분리 등 서비스 범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입찰은 구매자(발주자)가 거래할 대상에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 즉 발주자의 요구 사항을 명시한 일종의 시방서다.

낙찰방식은 발주자가 요구한 사항을 어떤 방식(기술, 가격, 품질, 등)으로 평가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계약은 발주자와 계약자간 거래방식을 문서로 합의하는 협정문이다. 발주사이클의 4단계는 상호 연관성이 높다. 즉, 발주사이클 4단계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없을 정도로 관련성이 높다.

눈을 국내로 돌려 공공공사의 발주사이클, 법에서 정립한 거래제도를 보면 발주사이클 완결성이 보이지 않고, 또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독립적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국내 공공공사의 입·낙찰제도가 끊임없는 시비 대상으로 떠올라 있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을 정리해 본다.

우선 발주방식에 대한 인식이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음으로 생기는 논란이다. 대안입찰, 기술제안입찰은 설계변경을 허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인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순수내역이나 물량내역수정은 설계변경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설계와 시공분리방식에 속한다.

그런데 마치 위에서 언급한 입찰방식이 전혀 별개인 것처럼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필자만의 오해는 아닐 것이다.

낙찰방식에도 상당한 혼선이 빗어지고 있다. 최저낙찰제, 종합낙찰제, 최적가치낙찰제 등이 마치 입찰방식이나 발주방식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최저낙찰제는 가격을 중시한다는 것이지 기술이 무시되는 건 아님에도 마치 가격이 모든 걸 지배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종합낙찰제는 가격과 기술의 배합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를 턴키방식에서만 적용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최적가치낙찰제는 건설공사의 최적가격이 아닌 목적물의 완성품의 품질과 생애주기 비용을 주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기술외적인 평가 항목이 들어가 있다. 이를 마치 대안설계로 인식하고 가격은 최저가격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계약방식이 발주, 입·낙찰방식과 깊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독립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국내 공공공사의 효율성이나 국내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아닌 외국 건설업체 혹은 전문기관 등에서 공공공사 발주제도에 대해 문의해 올 경우 영어로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방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한국 시장이 세계 건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를 약간 넘고 있다. 99%가 한국 울타리 밖의 세계시장이다. 거래 게임의 룰이 해외시장의 보편적 룰을 넘어 설 수 없다면 호환성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발주제도 전반에 대한 혁신이 필요한 것이다.

국내 공공공사의 거래제도인 발주제도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발주사이클에 대한 재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발행된 변변한 발주사이클 교재조차 없는 것도 재인식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개인이나 개별 기업 차원의 유·불리를 따지는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당장에 불편함이 따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면 혁신의 로드맵이라도 만들어 놓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숙제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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