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바다의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의 물결이 연쇄적으로 많은 물결을 일으킨다는 뜻인데, 막상 어부들이나 해양관련 종사자들은 잘 쓰지 않고 사회의 엉뚱한 구석에서 많이 들린다. 한 사건이 그 사건에 그치지 않고 잇따라 많은 사건으로 번짐을 이를 때를 뜻한다. ‘저축은행 부정대출 비리가 재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일파만파로… 어쩌구저쩌구…’

그런데 왜, 오직 페어웨이, 곧 풀밭 위에서만 경기가 이뤄지는 골프에서 이 말은 자주 쓰이는 걸까?
아마추어골퍼들의 스코어를 보면 첫 홀이 신기하게도 4명 모두 파(Par)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고수들이라 해도 첫 홀서 전원 파를 잡기는 글쎄...70 넘은 할머니가 초산하기보다 힘들걸?!

그런데 전세계 골퍼들 중 한국의 아마추어만큼이나 첫 홀서 파를 많이 잡은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뭐 굳이 설명이 필요 없지만 4인 중 1명만 파를 해도 나머지는 모두 ‘자동 파’의 실력이 된다. 이 김 작가 그동안 숱한 나라서 숱한 사람들과 라운드를 해봤지만 이 룰을 적용하지는 않더라. 아, 있다. 미국 뉴욕 한인촌에서 가까운 골프코스에 갔더니 ‘One Par All Par!’를 외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일파만파는 이제 양반이다. ‘무파만파’의 등장! 근데, 궁금한 것이 있다. 처음 머리 올리러 간 사람도 첫 홀서는 무조건 파를 적용해줘야 하나? 그리고 운 좋게 1번 홀서 버디를 잡은 사람도 파로 기록을 해야 하나?

자꾸 쑥스럽게 일파만파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느냐고 하실 분이 계실 것이다. 사실 나도 ‘일파만파’ 수혜를 입는 경우가 없지 않다. 같은 동반자들이 그러자는데, 무슨 고결한 사람인양 캐디에게 준엄한 음성으로 “아, 나는 첫 홀부터 정확하게 내가 친 타수를 써줘요!” 하기도 멋쩍다.

그런데 엊그제 진짜로 웃기는 골프장 아니 ‘캐디 언냐’를 만났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규정대로이면 스코어도 골퍼 자신이 스스로 기록하는 것이지 경기보조원이 대신 써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캐디는 아예 1번 홀 스코어 란에 파를 새긴 스코어 카드를 가지고 나왔던 것.

자기의 아이디어인지 경기과에서 시켰는지 선배에게 배웠는지…물어보진 않았지만, 마치 정답이 적힌 시험지를 받아든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일파만파를 흉보는 사람을 매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점수에 대해 너무 관대하면 긴장감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실력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1번 홀은 누구라도 몸이 덜 풀린 상태이고 그런 것을 감안하면 약간의 격려성 배려이자 어쩌면 덤일 수도 있는데, 특히 비즈니스 골프에서 관행으로 해도 무방한 거 아니냐고. 외국서도 샷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멀리건’이 있긴 하다.

우리도 멀리건을 쓴다. 근데 이것도 습관이 되면 나쁜 버릇으로 굳고 만다. 스스럼없는 친구들끼리 첫 홀 티샷에서 악성 샷이 나왔을 때 너그럽게 눈 감아 주는 정도로만 이용하면 괜찮을 것이다.

빌 클린턴은 여자 말고도 골프를 그리 좋아한단다. 오죽 했으면 정상회담 하는 곳 근처에 골프코스가 있느냐고 물을 정도이었을까? 그런 그가 계속 골프를 하지만 점수는 형편없어졌다고 한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있는 지금이 시간이 넉넉해 충분히 연습라운드를 더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가 ‘킹 오브 멀리건’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지 컴 이지 고우’라 하지 않았는가! 일파만파로 배운 골프, 매 라운드 평지풍파가 될지 모른다.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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