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칼럼 삶의 뜨락에서

아름다운 생태정원 이호순 원장의 삶
주민과 상생하며 18년간 땀흘려 일궈
흥정계곡옆 1만평에 150종 허브 만발
생전의 법정스님 향기롭다며 찾던 곳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메밀꽃축제가 열리고 아름다운 흥정계곡과 이효석문학관, 월정사, 백룡동굴, 대관령 양떼목장 등이 멀지 않아 사계절 휴양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절경 아래 청정수가 굽이치는 흥정계곡에 새로운 명소 허브나라농원이 18년째 뿌리를 내리고 있다.
허브는 식용과 약용은 물론 세제용, 미용화장수, 염료용 등으로 쓰인다. 허브나라에서는 파슬리, 로즈메리, 세이지 등 150여 종의 허브를 재배하고 있다. 다채로운 8개의 테마가든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허브들을 모아 가꾸는 셰익스피어 가든, 나비 가든, 록(Rock) 가든 등이 눈길을 끈다. 허브박물관, 터키박물관 한터울, 허브공예관, 야외공연장인 별빛무대도 갖추고 있다. 1994년 삼성전기 임원으로 퇴직한 이호순 원장(68)은 전주고 시절 농학자인 류달영 교수(1911~2004)의 강연과 글에 매료돼 농촌에 관심을 쏟았다.

◇허브나라농원 이호순 원장이 생태정원 18년의 역사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대 공대 조선공학과에 진학해서도 농대캠퍼스를 자주 찾았다. 그곳에서 농학을 전공하던 부인 이두이 씨(66)를 만나 결혼하면서 “나이 들면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짓자”고 약속했다. 부부는 수원시 화서동 팔달산 자락에 단독주택을 짓고 20년을 살았다. 두 사람의 나이를 합쳐 100살이 되던 해, 봉평으로 내려가 300여 평의 땅을 마련, 허브를 키우기 시작했다.

최초의 경관(景觀) 농업에 불을 지핀 허브나라는 2009년 환경부의 체험형 생태관광지 20선에 창녕 우포늪, 문경새재, 안동 하회마을 등과 함께 선정됐다. 초기에는 지역민들에게 농사방해 등 11가지 혐의로 고발 당하는 등 어려움도 많았다. 2006년 대홍수 때는 농원이 자갈밭으로 변하다시피 했다.

주민들이 찾아와 지역경제를 위해서 허브나라가 반드시 재기해야 한다는 격려에 힘입어 밤낮으로 흙과 나무, 식물 등을 수십 트럭씩 실어 날라 일주일 만에 농원을 재건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최고의 생태정원이 되어 해마다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전체 면적 3만여 평 가운데 1만여 평의 재배지에서 150여 종의 허브와 130여 종의 꽃들이 철따라 피어난다.

농원의 모든 건물은 산의 지형과 큰 나무들을 그대로 살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도록 원장이 직접 설계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서울 길상사와 강원도 움막을 오가며 허브나라에 들러 허브 차를 마셨다. 스님은 친필로 사인한 신간과 함께 “꽃이 만발한 뜰이 눈에 선하고 갓김치 먹을 때 허브나라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은 강원도에 허브나라가 있어 향기롭습니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보내 주기도 했다.

이 원장은 최근 허브나라를 찾아간 필자에게 농원 곳곳을 손수 안내하면서 말했다. “도시와 농촌에 양다리를 걸치지 않고 완전귀농을 한 결과 이 정도가 되었다. 지역민, 관광객과 더불어 즐기며 살아가는 허브나라를 만들겠다.” 그는 1999년 효석문화제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현재는 봉평전통민속보존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원장은 1999년 터키 대지진 참사 때 이재민 돕기 모금운동에 참여한 뒤 한터친선협회 회원으로 터키를 방문해서 방대한 고대 동서문명의 흔적들을 보고 박물관 건립을 결심했다. 농기구, 목공예품, 도자기, 동제품 등을 사들여 터키문화를 소개하는 한터울을 꾸몄다.

별빛무대에서는 클래식 콘서트와 가수 이문세의 숲속 음악회가 매달 열린다. 수익금은 평창군내 다문화가정돕기에 사용된다. 숙박시설인 자작나무집에는 각종 허브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찻집도 있다. 조선공학을 전공한 이 원장은 오늘도 거대한 꽃배의 선장이 되어 아름다운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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