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이란 소설가가 왔습니다.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합니다. 스물세 살에 첫 책을 낸 후, 마흔한 살인 올해까지 10권을 썼는데, 영국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읽히는 작가입니다.

이 책 저 책 다 합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팔린 게 100만 부 이상이라니 대단하지요. 우리나라에 온 건 이번이 처음으로, 새 책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소개도 할 겸 기대치 않았던 성원을 보내 온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가 국내에서 출간된 경위를 보면 그에 대한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이 책은 아직 영국에서도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새 책을 탈고했다는 소문을 들은 국내 출판사가 일찌감치 영국으로 가 판권계약을 맺고는 이번에 초판으로 무려 2만 권이나 찍었습니다. 자국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번역판이 먼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의 독자는 우리나라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주로 젊은이들로, 저도 얼마 전 시집간 딸아이가 그의 ‘광팬’이라 집에 사다 놓은 책 중 ‘불안’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등 몇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스무 살 가까이는 어린지라 처음엔 ‘무슨 대단한 게 있겠어’라는 심드렁한 생각으로 책을 들었지만 읽을수록 ‘도저’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은 젊은 작가들의 책에 나타나는 감정의 과잉, 여과되지 않은 지식, 무리한 구성을 접할 때의 불편함은 드러나지 않고 엄청난 공부의 흔적,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분석한 세상을 쉬운 문장으로 풀어놓아 읽는 것이 무료한 시간 때우기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는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일치하고, 또 우리의 전망을 정당화해 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행복의 건축)라거나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하나의 불안으로 바꿔 가는 과정이다’(불안)와 같은 문장을 읽을 때는 샘이 나기도 했습니다. 깊이 공부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은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문장이라는 생각에서요.

그는 오늘(9월 28일)자 한 신문 인터뷰에서 “나는 ‘전쟁, 살인, 지진 등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라 직장, 가족, 친구, 건축, 여행, 노동 등 우리 주위의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조용한 것들의 뒤에 숨은 기쁨과 고통 등에 대해 분석을 해 왔다”면서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불안에 지친 현대인에게 실질적이고 기능적인 답(위로)을 주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오늘 그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한 것은 이 인터뷰 말미에 실린 그의 한마디 때문입니다.

그는 “내 책이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한국의 독자들이 느끼는 불안이 이유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고는 ‘불안’이라는 책을 쓴 저자다운 분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현대인의 불안과 그에 대한 위로’에 대한 그의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건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안의 수위도 세계 1위며, 위로 받을 것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은 저만해도 그렇지요. 개인적으로는 노후대책, 국가적으로는 어지러운 정치와 사회정세 걱정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저인들 거기서 느끼는 불안이 다른 한국 사람보다 작은 것이겠으며 위로 받을 것이 더 적겠습니까?

하지만 ‘위로’ 전문가인 그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묻자 그는 “한국에는 활력과 열정, 미래에 대한 열망이 넘쳐 보인다. 한국은 인생과 미래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은 나라”라고 말했답니다. 뭘 보고 이런 말을 했는지, 그저 인사치레로 말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쯤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일 것 같습니다. ‘보통씨, 고맙소!’ /정숭호 코스카저널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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