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남긴 노자고향 중국 리우현 답사
태청궁 명도궁엔 태고의 흔적이 그대로
노자문화광장 등 백년대계 성지화 작업
전설의 술 ‘송허량예’ 국가 명주로 각광

필자는 최근 도가의 창시자로 《도덕경》을 남긴 노자의 고향이며 도교문화의 발상지인 중국 리우현에 다녀왔다. 허난성 저우커우시의 소도시 리우는 정저우공항에 마중 나온 여행사의 조선족 가이드와 중국인 운전기사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2500년 전의 사상가 노자의 흔적을 찾아 떠난 이번 여행은 10년 전부터 노자와 도덕경을 연구하고 있는 가형 덕분이었다. 정저우 도심에서 연결된 왕복 4~8차선 고속도로는 거의 직선이었으며 오가는 차가 몇 대뿐이었다. 3시간 만에 도착한 리우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영화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특히 도가의 사원인 태청궁으로 향하는 넓은 도로는 승용차, 삼륜택시, 자전거, 행인들이 뒤섞여 지나가는 ‘평등대로’였다. 가로등마다 달린 ‘도자’가 도의 본고장임을 자부하는 듯했다.

노자가 태어난 곳이며 도교의 본산인 태청궁은 한나라 때 창건됐다. 48만㎡의 광활한 부지는 베이징의 자금성 축소판 같았다. 성역화 작업으로 잘 정돈된 궁내를 한참 가면 노자탄생처 비석 뒤로 황색 유리기와를 얹은 태극전이 나타난다.

◇노자가 태어난 태청궁 건너편 문화광장의 거대한 노자상 앞에 선 필자.

이곳에 금빛 찬란한 의상을 걸친 노자상이 모셔져 있다. 주변에 노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측백나무와 지팡이로 사용했다는 기둥만 한 철주도 있다. 노자의 모친을 모신 선천태후묘는 그 옛날 노자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케 해준다.

중국의 학자들은 도교의 원조인 노자를 황제로 보고 한나라 때부터 황제와 노자를 묶어 황로지학이라 불렀다. 태청궁 북쪽의 명도궁에는 노자가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승선대가 있다. 서른세 개의 계단 위에 벽돌로 만든 구조물인데 노군대로도 불린다.

눈길을 끈 것은 고대 중국의 한자를 비석에 새긴 노자양생비자결(老子養生秘字訣)이었다. 하늘 天을 위아래로 2~4개 포개놓고 三 자 세 개, 日 자를 네 개 붙여놓았는가 하면, 男 자 세 개 밑에 女 자 등 모두 옥편에도 없는 희한한 글자들이었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서 문안드렸다는 문례정에는 두 성인이 담론을 나누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태청궁 건너편에는 거대한 노자상을 중심으로 노자문화광장이 조성돼 있다. 노자상은 ‘天下第一 The Greatest Philosopher’란 글씨를 새긴 제단 위에 서 있다. 광장에는 원나라 때 화가이자 서예가인 조맹부가 그린 노자 모습을 여러 개의 대형 석조물에 확대해 놓았다.

리우는 노자가 자신을 찾아온 공자에게 내놓았다는 전설의 명주 송허량예가 유명하다. 수수, 밀 등 곡식을 원료로 만든 증류주로 알코올 농도는 50도. 최고급품의 상표는 ‘老子’인데 대중적인 5성급은 200위안(38만200원) 안팎이다. 호텔에서 그 술을 마셔 보니 그리 독하지 않고 다음 날 숙취도 없었다.

정저우에는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운대산이 있고 소림사, 낙양의 용문석굴 등이 멀지 않지만, 가형은 노자에게 도를 배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상하이에도 노자를 모시는 태청궁이 있다. 초현대식 빌딩 앞에 고색창연한 목조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상하이의 빌딩 숲은 뉴욕의 맨해튼을 연상케 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는 황포 강변의 방송관제탑 동방명주에서 내려다본 스카이라인은 아름다웠다.

상하이박물관과 엑스포 중국관을 거쳐 상해임시정부를 둘러보고 여정은 마무리됐다. 가형에게는 이번 여행이 주마가편의 기회였다. 그러나 필자는 리우를 오간 까오수꽁루만 생각나니 이제부터 노자사상의 핵심이라는 무위자연부터 공부해볼 참이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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