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으로 써내려간 노의사의 인생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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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써내려간 노의사의 인생노트
  • 설희관
  • 승인 2011.10.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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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열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의 한평생
남을 돕는 의사되라는 조부말씀 못잊어
헌혈운동과 신용협동조합확산에 주춧돌
승마 경력 70년에 지금도 주2회 테니스

이삼열(李三悅) 연세대의대 명예교수(85)는 평생 의사의 길을 바르게 걸으면서 세 가지 외도(外道)에도 심혈을 기울인 노의(老醫)이다. 그의 외도는 의료봉사 및 선교, 헌혈운동, 신용협동조합(信協) 분야 등인데 모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겨 함자 그대로 만년에 기쁨(悅)을 느끼고 있다.

국내 무의촌 봉사활동뿐 아니라 일본과 대만의 나환자촌도 자주 찾았다. 일본 나환자촌에서는 환자들이 입술로 점자성경을 읽는 모습을 보고 눈물 흘린 적도 있다. 그는 최근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26년 동안 보건의료 선교활동을 하던 중 잠시 귀국한 김정윤 선교사(70)와 반갑게 해후했다.

서울 연동교회 장로인 이 박사는 선교위원장을 맡고 있던 1985년 김 씨를 우간다에 파송했다. 1989년 세계기독의사회 런던 이사회에 참석한 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4인승 전세기편으로 420㎞ 떨어진 쿨루바병원까지 찾아가서 그녀를 만났다.

전쟁과 내란으로 황폐해지고 에이즈와 풍토병이 만연한 그곳에서 2박 3일간 지켜본 선교사의 활동은 감동이었다. 랜드로바를 몰고 다니며 이동진료를 하면서 구멍 난 수술용 장갑을 끼고 신생아를 받을 때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이삼열 박사가 자신의 승마 사진 곁에서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다.

이 박사의 헌혈운동은 1958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모교의 임상병리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싹 텄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 혈액은행 앞은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매혈자와 그들을 등쳐먹는 깡패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4·19 직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정보부대 요원이 혈액은행 책임자인 이 박사를 찾아왔다. “세브란스 병원이 먹지 못해 부황증에 걸린 노동자, 농민에게 몇 푼 주고 피를 뽑아 부자 놈들의 보약으로 수혈해 주고 있다고 평양방송이 보도했는데 사실이냐?”고 따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장사진을 이룬 매혈자 대열을 보여주고 “이것이 솔직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1969년 한국헌혈협회 창설에 참여, 민간차원의 헌혈운동에 불을 붙였다. 정부 주도로 1975년 대한혈액관리협회가 구성되자 부회장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매혈을 헌혈로 전환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박사의 외도 가운데 신용협동조합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임상병리과장 시절 직원들이 가불을 자주 해갔다. 매달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신용협동조합은 1849년 독일에서 시작돼 미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가톨릭교회 중심으로 조합이 생겨났다. 이 박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서민금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 협동조합 연구소의 초청으로 신협 운동을 펼치는 데 필요한 교육도 받았다.

우선 세브란스병원과 연동교회에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65세에 은퇴한 뒤 10여 년간 고문으로 일한 제일병원에도 조합을 만들었다. 그가 학교와 교회, 병원을 설득해서 뿌린 협동조합의 씨앗들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비영리 한국신용협동조합으로 결실했다. 한국신협은 현재 조합원 수(520만 명)와 자산규모(39조 원) 면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세계 4번째이다.

함경도 함흥의 부유한 가정에서 3남매의 막내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19세부터 서울에서 유학했다. 6·25 때 홀로 월남한 모친과 고단한 삶을 살면서 조부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조부는 항상 “내가 뒷바라지할 테니 돈 버는 의사가 되지 말고 여러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분야를 택하라”고 했었다. 그래서 임상의학이 아닌 기초의학을 선택했다. 요즘도 주 2회 테니스를 즐기고 15세부터 시작한 승마 경력은 올해로 70년째다. 지난 21일 자택에서 인터뷰를 마친 필자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설희관]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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