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태신목장서 개와 양을 벗삼는
우리나라 최초 양치기 마태용 씨의 인생
희귀병으로 배변주머니 차지만 행복 느껴
컬러링조차 “컹컹”하는 애견 칸의 목소리

꽈리고추의 주산지이며 국가지정 민속주인 면천 두견주로 유명한 충남 당진군 면천면 문봉리에는 개인 목장 가운데 최대 규모인 태신목장이 있다. 은단풍나무 길을 지나 목장에 들어서면 30여 만 평의 방대한 초지에 목가적인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4개의 방목 초지에서는 소, 말, 양, 낙타, 타조 등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 농장의 낙농체험 프로그램인 치즈와 아이스크림 만들기, 우유 짜기, 송아지 우유 주기, 소 꼴 주기, 트랙터 타기, 말과 낙타 타기 등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등에게 인기가 많다. 1968년 개장한 태신목장은 우리나라 양치기 1호인 마태용 씨(43)의 양몰이 쇼가 유명한 곳이다.

양몰이는 주말과 공휴일에 하루 4회씩 양 방목장에서 하는데 지난 3일 목장으로 찾아간 필자를 위해 마 씨는 그의 다섯 살짜리 쉽독(Sheepdog) ‘칸’에게 20여 마리의 양떼를 몰게 했다. 진돗개처럼 생긴 칸은 쫑긋한 귀가 유난히 컸다. 매서운 눈초리의 ‘칸’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쏜살같이 달리며 양 떼를 몰았다.

◇우리나라 양치기 1호인 마태용 씨가 몰이가 끝난 양들 앞에 서 있다.

Lie down(엎드려) 하면 지척의 양무리 앞에서 그대로 엎드렸다. Walk up(따라붙어) 소리에 어느새 뒤쫓더니 Come bye(왼쪽으로 돌아), Away to me(오른쪽으로 돌아), Steady(포복자세로 걷는 속도를 낮춰), Stay(기다려)를 반복하며 종횡무진으로 달렸다. 마 씨의 핸드폰 컬러링은 “컹컹”하는 ‘칸’의 목소리이다.

그가 우리나라 최초의 양치기가 된 사연은 가슴 아프다. 경남 거창의 과수원집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마 씨는 선천적으로 양손이 안으로 굽어 지체장애 2급이다. 어려서부터 개를 좋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막노동하면서 공무원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26세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강원도 삼척시 노곡우체국에 발령받아 3개월간 실무수습교육을 마쳤다. 나보란 듯이 공무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였다. 온종일 어지럽고 설사를 계속하더니 67㎏이던 체중이 어느새 35㎏까지 떨어졌다.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모든 소화기관에 걸쳐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고 3년 동안 치료에 전념했다. 그는 인공항문을 달고 배변 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통증 때문에 엎드려 잔다.

옆에 개라도 있었으면 친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보더콜리라고도 불리는 쉽독을 알게 됐다. 1998년 미국의 농장 30여 곳에 쉽독을 사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개를 보신탕으로 해먹는 한국에는 안 판다”는 답신이 대부분이었다.

2001년 미국 테네시 주의 한 농장에서 340만 원을 받고 개 한 마리를 보내왔다. 집에서 가까운 남양주시의 유휴지 1000 평을 싼값에 임대, 스마트 농장을 차리고 개 훈련을 시켰다. 이때 ‘스마트 농장 마태용 선생님’을 줄여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5년 겨울 영국으로 가서 스코틀랜드 지방의 한 농장에서 한 달간 품삯도 안 받고 일손을 거들며 양치기 기술을 배웠다. 돌아올 때는 남양주에서 폐지를 주워 팔아 모아뒀던 500만 원으로 쉽독 한 마리를 사왔다. 그때부터 인터넷과 비디오, 관련 서적으로 개를 앞세운 양몰이 기법을 배웠다.

강원도 횡계 지르메 양떼목장, 대관령 바람마을 양떼목장에서 일하다가 2009년 11월 태신목장으로 터전을 옮겼다. 목장 사택에서 살면서 오전 6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개 5마리에게 양몰이 훈련을 시키고 출근한다. 비록 배변 주머니를 찾지만 좋아하는 개들과 70여 마리의 양과 함께 지내는 마태용 씨는 행복한 사람이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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