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진 영월미디어박물관장의 새로운 삶
내년 봄 개관 앞두고 농사도 짓느라 분주
신문·사진·영상 등 자료 4000여점 준비
AP통신 ‘100대 사진’에 선정됐던 베테랑

강원도 영월군은 인구가 4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전국 유일의 박물관 창조도시라는 문화적 긍지가 높은 곳이다. 단종역사박물관, 화석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묵산미술박물관 등 20개의 다양한 박물관이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안겨 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이곳에 내년 봄이면 영월미디어박물관(관장 고명진ㆍ61)이 문을 연다. 사진기자 출신인 고 관장이 큰 꿈을 안고 귀촌을 결심, 영월군 한반도면 광전2리 여촌분교 자리에 둥지를 튼 것은 지난 2월이었다.

한반도면은 2009년 이전까지 서면이었다. 서강의 강줄기가 오랜 세월 면 전체를 휘감아 돌면서 옹정리 선암마을에 한반도 지형을 빼닮은 지형이 생겨나 관광지로 부상했다. 광전2리는 예부터 이웃의 골말, 마지라오 마을, 배일치 마을의 선착장이 있던 곳이어서 뱃말이라고 한다.

20여 가구 60여 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고 관장은 산수가 수려한 이곳에 미디어박물관을 개관해서 국내외 언론(신문, 출판, 뉴미디어)의 근현대사적 발자취를 담고, 신문·사진·영상 등 매스컴 관련 자료와 장비 4000여 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기자 해보기, 가족신문, 여행신문 만들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구상중이다.

◇고명진 관장이 부인 김영숙 씨(57)의 생일을 맞아 딸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울에서 살던 고 관장 부부는 지난 2월 주민등록까지 옮겨놓고 본격적인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박물관 옆 주택에 세들어 살면서 난생처음 농사일부터 배웠다. 목적이 뚜렷한 귀촌이어서 그랬던지 동네 주민들이 이런저런 일을 많이 도와줬다. 실하게 여문 배추 120여 포기도 수확했다.

지난 5월에는 영월군과 연세대가 주관한 제1회 영월연세포럼의 홍보위원장으로 사진뉴스레터를 매일 발행, 국내외 학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행사는 한국학, 박물관학, 디자인학에 대한 국제학술포럼으로 20개국 130여 명의 학자들이 참석했다.

영월희망농업대학의 농촌관광반에도 등록, 매주 화요일 4시간씩 24주차 공부를 지난 23일 끝냈다. 강의는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농촌관광개발이 주제였다. 수강생 44명 가운데 40명이 귀촌한 사람이었다. 학생장으로 솔선수범한 그는 농촌진흥청장상을 받게 됐다.

고 관장은 얼마 전부터 마을 카페 ‘뱃말이야기’를 신천초교 5학년 남녀 어린이 두 명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직접 취재하고 사진도 찍어 올리는 마을 카페는 이제 뱃말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고 관장은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 시절, 특종을 많이 했다. AP통신은 1999년 ‘20세기 100대 사진’을 선정했는데 그가 찍은 ‘아! 나의 조국’ 제목의 사진이 뽑혔다.

이 사진은 1987년 6월 26일 부산 문현동 로터리에서 경찰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대를 향해 다탄두최루탄을 발사하자 윗몸을 발가벗은 한 청년이 절규하며 달려나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는 한국일보 재직 시 한국포토저널리즘학회 창설을 주도,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겸임교수, 한국사진기자회장 등을 지냈다. 2005년에는 민영통신사 뉴시스의 편집상무 겸 사진영상국장으로 일했다.

그의 이러한 이력과 경력이 미디어박물관 개관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수많은 선후배 기자들과 제자 등이 박물관에 전시할 귀한 자료를 잇달아 기증하고 있는 것이다.

고 관장은 “농사만 짓는 귀촌이 아니라 평생직장에서 하던 대로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고 ‘나눔과 베품’을 함께 실천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며 “내년 4월 아담하지만 내실 있는 미디어박물관을 선보이겠다.”라고 다짐했다. 박물관을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로 내려간 영원한 사진기자 고명진 관장의 인생 2막에 박수를 보낸다.  /설희관 〈언론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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