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 은퇴한 뒤 농사꾼으로 변신한
철원 동막골 블루베리농장 이석홍 대표
6000여평에 3년생 묘목심어 올 첫수확
컨테이너에 살면서 주말에만 서울 집에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0’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45세 남자는 앞으로 평균 34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같은 나이 여자의 기대 여명(餘命)은 40년이다. 우리나라가 머지않아 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뜻이다.

 100세 장수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노후생활자금과 건강, 친구 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은퇴 후를 미리 설계하고 보람차고 행복한 인생 2막을 사는 경우도 많다.

이석홍 씨(73)는 2005년 강원도 철원군 동막리에 ‘동막골 블루베리농장’을 마련하고 부인과 함께 농사꾼으로 살기로 했다. 비무장지대 근처의 산자락 6000여 평에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한탄강이 멀지 않은 이곳은 우거진 숲 사이로 가재와 맹꽁이가 서식하는 실개천이 흐르는 천혜의 땅이다.

그래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블루베리에게는 최적의 땅이다. 부부는 미국 여러 도시를 캠핑카로 돌 만큼 국내외 여행을 자주 다닌다. 농장을 하기 전, 딸 내외가 사는 뉴저지주에 갔을 때 교포가 운영하는 100만 평 규모의 블루베리 농장을 방문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석홍 씨 부부가 내년도 블루베리 영농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이 씨는 “현업에서 은퇴할 시기가 되면서 농촌으로 회귀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농사라고 마음먹고 뛰어들었지요”라고 말했다.

지역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보니 처음에는 주민들이 부동산 투기용으로 땅을 산 줄로 오해하고 경계도 했다. 얼마 후 열심히 일하는 부부를 이해한 이웃이 농사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농장 옆 컨테이너를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텃밭에 철 따라 토마토, 오이, 고추, 상추, 쑥갓도 심었다. 한여름에도 온종일 땀 흘렸고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에도 농장에서 지내며 주말에만 서울 평창동 집으로 가서 쉬었다. 철 따라 재배한 농작물을 서울의 자녀와 이웃에게 나눠주는 즐거움도 농사가 준 엔도르핀이었다.

농장 생활은 계절마다 부부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을 프리즘에 비추듯이 보여줬다. 신록의 봄은 반가웠고, 여름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바라본 하늘의 별들은 찬연했다.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가을은 풍성했으며 폭설이 내리는 엄동(嚴冬)은 산속의 잉꼬 같은 노부부에게 인내를 가르쳤다.

농사 첫해에 블루베리 3년생 묘목을 심어 연차적으로 일구어 지난 여름 알찬 수확의 기쁨도 누렸다. 지하수를 개발하고 제초작업과 거름주기 등을 하면서 고생한 보람이 컸다.

블루베리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슈퍼 푸드 중의 하나. 블루베리는 비타민 C와 철(Fe)이 풍부하고 항산화 능력이 뛰어나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보랏빛 달콤한 열매를 날것으로 먹거나 크림과 함께 후식으로 좋으며 과자반죽에 넣어서 구워 먹기도 한다. 산성이 강하고 물이 잘 빠지면서도 촉촉한 흙에서만 자라는 블루베리는 4월부터 10월 사이에 수확한다.

이 씨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2년간 전후방은 물론 월남전에도 참전했으며 1975년 예편 후 건설회사에서 해외건설공사 관련 업무를 보았다. 1979년 국내 최초로 액화석유가스(LPG)를 산유국에서 수입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담당하면서 회사 일에 몰두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자원관리를 전공했으며, 1985년 미국 가톨릭 대학교(CUA)대학원 연구원으로 2년간 공부했다.

귀국 후 1987년 스웨덴 합작회사인 광림기계(주)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1995년에는 IT(정보기술) 관련 사업도 창업했다. 이 씨와 같은 인생 2막은 그리 흔치는 않겠지만,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루베리 잉꼬 노부부는 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설희관 <언론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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