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인문학적 사유로 시대 성찰하는
이화여대 석좌교수 김우창 선생 대이어
서울대 조기졸업 1호인 아들 민형 씨는
우리 수학계 최초로 옥스퍼드대 정교수

1970년대 평론집 〈궁핍한 시대의 시인〉으로 유명한 김우창 선생(75)은 북한산 자락인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만 30년 넘게 살고 있다.

지난 6일 찾아간 자택 앞에는 오래된 엑셀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다. “검소하거나 소박해서가 아니라 새 차가 필요 없고 주행에 별문제가 없어 타고 다닌다”라는 바로 그 차다.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와 미국 코넬대 대학원을 거쳐 하버드대에서 미국 문명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영문과 교수로 오래 봉직한 뒤 고려대 명예교수와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로 있다.

1965년 청맥지(誌)에 ‘엘리어트의 예(例)’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선생은 폭넓은 인문학적 사유(思惟)로 이 시대의 문명과 사회를 성찰하고 있는 석학이다.

고려대 문광훈 교수는 김우창 선생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다.
‘시적 마음의 동심원-김우창의 인문주의’ 등을 펴냈으며 얼마 전에는 ‘김우창과의 대화, 세 개의 동그라미’를 발간했다. 이 책은 문 교수가 넉 달 동안 11차례 선생의 자택을 찾아가 4시간씩 인터뷰한 내용이다.

문 교수는 대담에서 “선생님의 책을 읽고 울먹인 적도 있습니다. 사랑하거나 흠모하는 이들에게 흔히 바라듯이 저는 선생님께서 더 이상 늙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김우창 교수와 영문학자인 아내 설순봉 여사가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다.

김 선생은 이화여대 학술원의 주 2회 강의 말고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월 말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156편을 수록한 <성찰- 시대의 흐름에 서서>라는 칼럼집도 펴냈다.

11월 24~26일 부산에서 열린 제1회 세계인문학포럼에서는 프레드 달마이어 노트르담대 명예교수 등과 기조강연을 했다. 최근에는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의 라트비아대학 동아시아센터가 개최한 ‘동아시아의 풍경과 시’라는 주제의 회의에도 참석했다.

선생은 영문학자인 부인 설순봉 여사(77)와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있다. 셋째인 포스텍(포항공대) 석좌교수 민형 씨(48)는 최근 국내 수학계 최초로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학 수학과 정교수로 임용됐다. 민형 씨는 내년부터 1학기에는 옥스퍼드대에서, 2학기엔 포스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그의 옥스퍼드대행에는 미국 프린스턴대 앤드루 와일즈 교수의 역할이 컸다. 와일즈 교수는 1994년 수학자들이 300년 넘게 매달려 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 세상을 놀라게 한 수학의 거장. 와일즈 교수가 올해 옥스퍼드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민형 씨를 정교수로 추천한 것이다.

또한, 옥스퍼드대가 포스텍 석좌교수를 맡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민형 씨를 한 학기 강의도 불사하며 영입한 이유는 그의 연구 성과 때문이다.

민형 씨의 전공은 수학의 고전 분야인 정수론. 그동안 별개 분야로 여겨졌던 위상수학을 정수론에 적용해 수학 내에서 통섭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양대 논문저널 ‘수학연감’과 ‘미국수학학회지’에 모두 논문이 게재됐을 정도로 연구 실적을 인정받았다. 1985년 7월 6일 자 중앙일보 사회면 머리기사는 민형 씨의 오늘을 예견하고 있다.

기사는 중·고교를 거치치 않고 검정고시로 입학한 수학과 김민형 군(당시 21세)이 서울대 개교 이후 처음으로 조기 졸업한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졸업 전에 이미 미국의 명문 예일대가 풀 스칼러십과 생활비까지 지급하는 조건으로 대학원 입학을 허가했다는 사실을 곁들였다.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인 김우창 선생과 세계 수학계에 우뚝 선 민형 씨 부자(父子)는 우리나라의 보배이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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