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사 아침프로에서 인상적인 강의를 들었다. 순환기 계통을 전공한 내과 전문의의 특강이었다. 강사는 강의 말미에 명상(冥想)을 통한 감사와 축원(祝願)을 거론했다. 범사(凡事)에 감사하고, 주위 사람, 심지어는 자신을 미워하는 상대마저 잘되도록 빌어주는 마음가짐이 병을 치료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내용이었다.

의사는 오랫동안 실험, 실습이 몸에 배인 과학도로서, 타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고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다. 대학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등 도합 11년을 수련해야 전문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 수련의들은 어떤 육체노동자와 비교해도 덜하지 않은 혹독한 수련기간을 거친다.

정량(定量), 정성(定性)의 정밀한 수치 속에서 살아온 의사가 명상, 감사, 축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이색적이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의 임상(臨床) 경험 결과, 어떤 과학적 수치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조 시대의 명의(名醫) 허준(許浚)의 일생을 다룬 소설 《동의보감》을 보면 “명의란 심의(心醫)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환자의)마음을 다스리는 의사가 명의라는 뜻일 게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환자에게 믿음을 준다는 뜻이다. 환자가 의사를 믿으면 밀가루를 약이라고 하고 주어도 웬만한 병이 낫는다고 한다.

그래서 ‘플라시보(僞藥·위약)효과’라는 의학 용어도 생겼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 부모님의 은혜를 잘 모르듯,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 우리가 가진 평범한 능력, 기능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보통은 잘 느끼지 못한다. 건강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눈이 두 개 있어서 얼마나 편리한지, 튼튼한 이로 잘 씹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헬렌 켈러는 어릴 때 앓은 열병의 후유증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三重苦)의 고통을 이겨내고 수많은 장애우의 희망이 된 분이다. 그녀는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하느님께서 3일 동안만 눈을 뜨게 해 주신다면 첫 번째 날은 나를 지도해준 설리번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싶고, 둘째 날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고, 세 번째 날 아침에는 부지런히 출근하는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점심때는 영화를 보고 저녁때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 윈도우를 본 후, 밤에는 3일간 눈을 뜨게 해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본래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한 맹인 팝 가수 스티비 원더는 어느 날, 안과 의사를 찾아가 개안(開眼)수술의 가능성을 묻는다. 의사는 아주 어려운 수술을 거쳐 딱 15분간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주저함 없이 수술을 해달라고 한다. 이유는 딸의 얼굴을 15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수술 후, 그는 딸의 얼굴을 보고는 〈Is not she lovely?〉라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SNS가 활성화 됐다고 해서 얼굴을 직접 마주치는 모임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MP3가 발달됐어도 노래방은 더 늘어나고 있다. 화상전화가 생겼지만, 명절에 고속도로를 주차장처럼 만드는 귀향(歸鄕)전쟁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받는 육필(肉筆)편지는 특별한 감동을 준다. 이런 현상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본성, 즉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반증일 것이다.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나갈 때,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기준을 맞춰야 한다는 중요한 가르침 아닐까 싶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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