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계속계약으로 시공계획도 못 세워
설계도는 상세·단가는 두루뭉술해 논란
최저가입찰제 위한 계약환경 너무 척박

올해부터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려던 최저가낙찰제가 2년간 유보됐다. 유보보다는 폐지가 정답이라는 주장도 있고 유보자체만으로도 큰 성과(?)라 주장하는 업체들도 있다.

정부와 산업계 모두 확대와 폐지 주장만 들리지 국내의 최저가낙찰제 운영환경에 대한 논란은 너무 미약하다. 건설공사 입찰방식에서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인지 아닌지 논란만 있지 이 방식의 적용환경에 대한 고려가 논외라는 점에 강한 의문이 든다.

몇 년 전 대규모 국책사업에 근무한 경험을 가진 외국기업 임원이 국내 입·낙찰제 환경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필자와 논의한 적이 있다. 당시 외국전문가는 국책사업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공공공사 발주 사이클 전반에 많은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최저가낙찰제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한 제도 기반 운영환경에 내재된 문제점을 4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계약운영이 장기계속계약제도라는 점이다. 발주자의 예산 편성 및 배정이 예측 불가능해 시공계획을 세울 수 없다. 배당된 당해년도 예산 범위내에서 당해 연도에 해야 할 일을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시공계약자에게는 계획이나 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해외공사에서 3년이면 족한 공사를 7~8년간에 걸쳐, 그것도 운(?)이 좋으면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발생되는 사무소 운영비, 차수별 준공설비 유지관리비, 인건비 부담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구조로 인해 시공자에게 손실액을 일방적으로 떠넘겨 과다한 제경비 지출문제를 야기한다.

둘째는 내역입찰방식이다. 설계사가 시공계획 및 공법을 가정하여 산정한 내역물량과 공종별로 입찰자는 단가만 기입하도록 하는 점이다.

당연히 최저가인지 여부를 공종별 단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계약 이후에 발생하는 물량이나 공법 변경에 설계변경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설계변경에 대한 보상 여부가 계약자보다 발주자의 해석여부에 좌우된다는 점은 시공계약자의 전문성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셋째는 설계의 완성도 문제다. 설계자가 물량내역서를 만들기 위해 시공자 영역인 시공공법까지 설계에 포함시킨다. 당연히 설계도면이 너무 상세하다. 현장 여건의 변동이 많은 게 건설현장이다. 실제 현장에서 잦은 설계변경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터파기나 도심지 공사의 경우 불확실한 현장 여건이 많아 물량 확정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금액기준만으로의 최저가낙찰제 적용으로 시공계약자의 책임을 확정시킬 수 없는 불합리한 점들이 너무 많이 나타난다.

넷째는 가격만을 중시하는 최저가낙찰제 운영 방식이다. 건설공사는 주문생산방식이기 때문에 가격만을 중시하는 기성제품 구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도 최저가낙찰제도는 ‘수용가능한 기술을 전제로 최저가격(LPTA)’이다. 선별적인 최저가낙찰방식이지만 기술성평가 단계를 반드시 거친 후 가격을 포함한 입찰참가자격을 준다.

기술성 평가는 상대평가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국내의 경우는 입찰참가자격심의(PQ) 과정이 너무 느슨하다. PQ 통과율이 95% 이상이라는 것은 전혀 변별력이 없다는 뜻이다.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건당 수십개에서 수백개에 이르는 입찰참가자수가 공공공사에 보편적이라는 데는 분명 문제가 있다. 건설공사에서 입찰자를 액셀(?) 프로그램으로 가려내는 편의성은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다.

공공공사에서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할 수 없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제도적인 기반 환경을 먼저 조성한 후 확대 여부를 검토하는 게 순서다. 제도적인 기반 운영환경에서 다뤄야 할 주요 이슈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조건 금액기준의 최저가낙찰제가 아닌 공사 유형이나 성격별로 최저가여부를 판단하는 선택제로 가야 한다.

둘째, 최저가낙찰제 방식에서 공사비 저감 잣대를 낙찰시점이 아닌 준공시점에서 타 낙찰방식과 비교해 성과 여부를 판단한 후 시행해야 한다. 셋째는 최저가낙찰제 적용대상 공사는 계속비계약을 의무화시켜야 한다. 입찰자에게 시공계획과 공법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넷째는 ‘최저가=예산저감’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싼 게 비지 떡’이라는 격언은 오늘날까지 전혀 변하지 않는 진리다.

공공공사에 거품이 들어 있다는 일방적 주장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용어에만 현혹돼 제도적 기반 환경을 무시하게 되면 제도로 인한 손실을 너무 일방적으로 전가시키게 된다. 약자에게 손실이 돌아가는 게 최저가낙찰제라면 국가와 국민들도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건설산업도 국가에 속하며 종사자도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극소수에 불과한 몇몇 사례를 들어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게 국가정책은 아니다. 제대로 된 용어는 제대로 된 제도 기반 환경에서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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