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아인슈타인’. 얼마 전, 과학문화진흥회 주최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시회 제목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불세출의 예술가와 천재 과학자의 조합이 눈길을 끈다.

사람은 조직(組織) 속에서 태어나고, 조직 속에서 살다, 조직 속에서 죽는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조직에 속하고, 자동적으로 국가 조직의 일원이 된다. 자라면서는 학교, 군대, 회사에 들어가 조직을 이루고, 결혼하여 가정이라는 최소단위의 조직을 꾸린다.

조직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한 지위와 역할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질서 있는 집합체다. 그러나 본래는 날실(=經絲ㆍ경사)과 씨실(=緯絲ㆍ위사)을 베틀에 걸고 천을 짜낸다는 뜻이다.

‘날’과 ‘씨’는 지구를 가로 세로로 자른 가상(假想)의 선, 경도(經度) 위도(緯度)라고 할 때의 그 ‘경위’고, “일이 전개되어 온 ‘경위’를 밝히다”고 할 때의 그 ‘경위’다.

조직된 천은 상상 외로 질겨서 사람들이 옷을 해서 몇 년을 입고 다녀도 거뜬하다. 그 질긴 천의 모태(母胎)는 연약한 솜이다. 솜을 자아내 물레에 걸면 솜이 비비 꼬이면서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지고, 이 실로 천을 짜는 것이다.

볏 집도 마찬가지다. 볏 집을 여러 겹으로 꼰 새끼와 볏 집이 섞여 쌀을 담는 가마니가 만들어지고, 새끼가 여러 겹 꼬이면 칼로 내려쳐도 끊어지지 않는 강력한 밧줄이 된다. 줄다리기 할 때처럼 양쪽으로 당기는 인장력(引張力)이 생기기 때문이다.

1937년 완공된 미국 샌프랜시스코의 금문교(金門橋)는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명물이다. 길이 2825m, 너비 27m의 현수교(懸垂橋)로서, 6차선 도로를 매년 수백만 대의 차량이 지나다니고, 초속 40m가 넘는 강풍이 불어도 끄떡없도록 설계돼 있다.

70 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한 번 없이 그 위용(偉容)을 자랑한다.
이 다리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높이 227.5m, 거리가 1280m 떨어져 있는 두개의 주탑(主塔)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탑과 다리 상판을 이어주는 주(主)케이블 속의 지름 5mm짜리 가느다란 철사들이다. 2만7572 줄의 철사가 꼬여 지름 92cm인 주(主)케이블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미국 토목학회가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하나로 꼽는 금문교도 결국 가느다란 철사들이 여럿 결합돼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 상태의 솜이나 철광석을 가공해 1차로 실과 쇠, 2차로 천과 케이블(철사)이라는 공산품을 만들었다. 이것이 끝이었다면 의미가 작다. 3차로 디자인 개념을 더해 예쁜 문양이 수놓인 공예품을 만들고, 케이블을 주력으로 하는 아름다운 현수교를 탄생시켰기에 의미가 큰 것이다.

금세기 최고의 기술자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는 ‘피카소’를 사랑한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한 학기 만에 중퇴한 리드 칼리지 재학 중, 서양인으로서는 드물게 서예(書藝ㆍcalligraphy)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실용적이지는 않았지만, 과학으로선 파악할 수 없는, 역사가 담긴 예술작업이었다”고 했다. 실용적이 아니라고 했으나, 10년 후 애플이 출시한 매킨토시 컴퓨터의 다양한 글자체와 조판 능력에서 그의 서예 사랑은 실용적 결실을 본다.

동양 사상과 예술에 관심을 기울인 바 있는 스티브 잡스가 세계 디지털 산업계를 뒤흔드는 선두주자가 됐던 것은 다만 우연이었을까. 과학과 예술이 상이(相異)한 것 같지만, 동근이지(同根異枝)라는 생각이다.

질긴 실, 강력한 철사는 좌뇌(左腦), 예술품 수준의 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금문교 같은 작품은 우뇌(右腦)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좌뇌와 우뇌의 거리는 겨우 몇 cm에 불과하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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