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창 밖을 바라보는 유미의 눈에 비를 피해 포장마차로 뛰어 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반짝이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밤무대 가수인 듯했다.

‘아마 저 남자는 가족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지. 아니면 아직 포기 못한 자신의 꿈 때문일지도 모르고.’
유미에겐 그 두 개가 모두 없다. 사랑할 가족도, 지키고 싶은 꿈도.
유미도 뭔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 우울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다.

 
“음마야! 훈아 오빠야도 오뎅 먹는 가베예.”
포장마차 주인아줌마는 우나를 나훈아라고 깜빡 속았다. 우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나훈아 이미테이션 가수라지만 우나가 나훈아 대접을 받는 건 사실 이럴 때가 전부다.

“고마 싸인 한 장 해드릴까예?”
감동한 주인아줌마가 오뎅 값을 안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우나와 유미의 눈이 마주친 건 우나가 가짜 사인을 막 마쳤을 때다.
언제부터 들어와 있었는지 유미가 우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하세요, 나훈아’ 우나의 싸인에 주인아줌마는 감동했지만 유미는 핏- 하고 웃음이 나왔다.
우나가 창피했던 건, 유미의 첫 인상이 너무 고왔기 때문이다.

예쁜 것과 고운 것은 다르다. 예쁜 여자라면 우나가 드나드는 밤업소에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우나는 고운 여자가 좋았다. 예쁜 것과 고운 것의 차이는 그릴 수 있고 없고의 차이다. 예쁜 것은 그릴 수 있지만 고운 것은 그릴 수 없다. 예쁜 것은 보는 것이고 고운 것은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나가 유미의 첫인상에 반한 것은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나는 분명 무엇을 느꼈다.
그런데 하필 이런 모습으로 저 여자를 만나다니!

저 여자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하단 말인가!
딱 봐도 3류 모창가수가 포장마차 아줌마에게 사기나 치는 꼴이라니!

“국수 되죠?”
유미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우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걸어 온 카바레 <불나방>의 박 부장은 조영필이 스테이지를 빵꾸 냈으니 우나에게 땜빵을 하라 했다.

밤업소의 섭외부장과 출연자는 꼭 부부같은 사이다. 한번 요구를 들어주면 더욱 큰 것을 요구하고 그렇다고 무시하면 사는 게 고달파진다. 이럴 땐 남한테 미루는 게 최고다.

“형, 난 스케쥴 있으니까, 내가 주용필 소개시켜 줄게.”
감동받은 건 포장마차 아줌마다. 나훈아도 감지덕지인데 조용필이라니!

“지… 지금 용필이 오빠야라고 했는교?”
그 말에 우나는 아차 싶었다. 나우나에 주용필… 끼리끼리 논다고 생각하겠지. 얼굴이 화끈거려 우나는 그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아줌마. 국수 안 돼요?”
그때 유미는 우나 앞에 놓인 다이어리를 보았다. 아마 저 남자의 다이어리일 것이다. 왜 그랬는지 유미는 그 다이어리를 슬쩍 자신의 백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우나는 자신을 스치듯 지나가는 유미에게서 아찔한 향기같은 것을 느꼈다.
우산도 없이 빗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그녀.

우나는 그녀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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