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에 걸친 윗도리 속주머니에 볼펜 한 자루가 만져졌습니다.

하얀색 몸체에 아래쪽에는 검정고무를 둘러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둔 볼펜입니다. 몇 달 만에 이 볼펜을 다시 보는 순간 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니 그 얼굴에 떠올랐던 한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이었지요. 지하구간을 빠져나와 지상구간으로 올라온 지하철 차창으로 초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출근 때가 한참 지난 터여서 서서 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평화가 깨진 건, 옆 칸에서 한 사람이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팔다리가 뒤틀리고 목까지 한쪽으로 돌아간 여윈 모습의 그는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볼펜을 앉아 있는 승객들 무릎 위에 놓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 승객들 표정은 거의 대동소이하지요. 아예 눈을 감거나, 애써 눈길이 마주치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거나, 옆 자리가 비어 있으면 볼펜을 거기에 슬그머니 놓아두던가 하는 무관심…. 아주 드물게는 바로 그 자리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정말 그런 모습은 아주 드물지요.

물론 제 무릎에도 한 자루가 놓였습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기우뚱 기우뚱 더욱 힘겹게 한 바퀴를 다 돈 그는 이제 다시 한 바퀴를 돌기 시작합니다. 승객들의 표정은 아까와 똑같아집니다. 그가 다가오자 떴던 눈을 다시 지그시 감거나 그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응시하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그 역시 아까처럼 불편한 몸짓으로 승객들의 무릎에서 볼펜을 거둬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릎 위 볼펜을 집어 그에게 건네주기도 합니다. 볼펜을 산 사람도 있었던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경우 무조건 ‘천원’입니다. ‘그들’이 ‘팔려는’ 것이 껌이든, 볼펜이든, 아니면 그냥 도와달라는 글귀가 쓰인 쪽지든 무조건 물건과 함께 천원짜리 하나를 그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나름 ‘모처럼 착한 일을 했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천원짜리 하나로 볼펜이나 껌 대신 안도감을 사는 것입니다. 단 주머니에 천원짜리가 있을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오천원이나 만원을 주면서까지 사기에는 그 안도감이 비싸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천원짜리가 없을 때는 저도 외면하거나,  눈을 감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불편합니다. 눈을 감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멋있는 자가용만 타고 다니는 돈 있는 사람들은 지하철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를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지요?

어쨌든, 그날은 마침 천원짜리가 있었습니다. 제 앞에 선 그에게 볼펜과 함께 천원짜리를 내밀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할머니는 껌과 함께 천원을 준 저에게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라고 했는데, 돈과 함께 물건까지 돌려주니 그런 덕담을 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그는 팔을 뒤틀어 가면서 제가 돌려준 볼펜을 한사코 제 손에 쥐어주려고 했습니다. 돌아간 입으로는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눈은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으며, 표정으로 봐 화가 나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요. 하지만 당신이 이 볼펜을 가져가지 않으면 나를 거지로 만드는 거요!’라는 것 같았습니다. 볼펜을 쥐어주고 지나가는 그를 잠깐 아래 위로 훑어보았습니다. 잠바와 바지, 운동화가 모두 새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참 깨끗했습니다. 남루했지만 초라하지는 않았습니다.

몇 달 만에 그 볼펜을 다시 보면서 그의 얼굴이, 그의 표정이 다시 떠오르는 건, 그날 그 표정을 본 직후 그를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게 기억나서입니다. 천원으로 안도감을 사려다, 한 사람의 자존심을 망가뜨릴 뻔한 일이 좋은 글감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숭호 코스카저널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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