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기업과 기업인이 각 분야로부터 공격받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양극화나 불평등 같은 사회적 불만의 원인을 기업과 기업인이 상생(相生)협력이나 동반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데 있다고 책임을 돌림으로써 반(反)기업 정서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정치권은 말할 것 없고,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학교수, 시민단체, 관료사회는 몰론 언론마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평등이나 분배의 문제가 마치 대기업의 책임인 양,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각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거시(巨視)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부(富)의 창출에는 효율적이었지만,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 평등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불안이 커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또 미시(微視)적으로는 편법 상속, 비자금, 일감 몰아주기, 중소기업 시장 빼앗기, 불법적인 자금 운용 등 대기업의 행태에 대해 지적할 것이 적지 않다.

지금은 그런 관행이 많이 없어졌지만, 과거엔 기업들이 권력자나 그 측근이 운영하는 각종 단체에 성금을 바쳐야 했고, 법에 없는 무슨 헌금, 무슨 성금 등 준조세적(準租稅的) 금품의 납부를 강요받았다.

아직도 대기업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매년 연말연시에 연례행사처럼 행해지고 있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재단이나 기금을 만들어 거액을 출연하는 것 등으로 면책(免責)을 도모하는 일을 많이 보아왔다.

기업의 성금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기업의 책무(責務)가 중소기업과 이익을 나누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많은 기부를 해야 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낸 다음, 적정한 세금(稅金)을 납부하고,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본연의 의무다. 그러고도 여력(餘力)이 있다면 장학금을 출연한다든가, 불우이웃돕기 성금, 수재의연금 등을 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성금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기업의 성금은 법인세를 낼 때, 비용으로 인정받아 세금을 감면받는다. 정부는 세출이 정해져 있는 만큼, 감세(減稅)된 금액만큼 다른 데서 세입을 보충해야 한다. 그럴 경우, 감액된 세금만큼 결국 일반 국민이 분산해서 부담하게 된다.

둘째, 기업의 성금, 출연금 등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따져 봐야한다.
기업의 대주주가 개인적으로 자신이 받는 급여나, 주식배당금에서 출연(出捐)하지 않는 한, 기업의 명의로 나오는 성금이나 출연금은 비용으로 계산돼 제품의 가격에 반영된다. 소비자는 그런 제품의 구입을 통해 결국은 기업이 낸 성금을 분산하여 부담하는 꼴이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법인세 외로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은 모두 일반 국민, 또는 소비자가 대신 낸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미국 부자들은 회사 명의로 기부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 형태로 기부하여 세금을 감면받고 뒤에서 주주권을 행사, 사실상 기업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초,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제3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참석자들이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는 기업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의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업이 윤리적, 도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시대의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고, 주주 가치를 높이는 차원을 넘어서서, 윤리적·자선적 의무라는 더 높은 단계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원의 의무가 기업의 이름보다는 개인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더 윤리적이고, 더 자선적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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