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원이나 둑방 길에 나가면 개를 끌고 오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를 ‘또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가족관계가 좋지 않거나 가족이 없어 외로운 사람들은 개라는 반려동물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두 달 전 부산에서는 4년 동안 개하고만 살던 30대 여성이 개가 죽자 화장실에 착화탄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유서에는 “개와 함께 묻어 달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개를 통해 해결해 온 경우입니다. 개는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말을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개를 기르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개와 사람 사이의 이런 교감과 애정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미워합니다. 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가족관계에서 개가 갈등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어느 분이 쓴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개를 미워하는 사람은 개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개를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개는 사랑하지만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람보다는 개가 더 귀하고 중한 경우도 많고요.

개는 싫어하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제 친구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지난 연초 명절 지난 뒤, 우리 모임에서 그 친구는 무척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러다 그 친구의 탄식을 들었습니다. 개를 돌볼 사람이 없어(어미 개가 새끼를 세 마리 낳은 지 2주일이 되었답니다.)

명절에 찾아 뵙지 못하겠다는 며느리의 겸손하고 간절한 사죄의 전화를 받고 ‘개만도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서러웠다는 이 늙은 친구의 허전함을 위로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며느리는 완전히 못되고 되바라진 사람이었을까?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며느리는 정직했고 친절했고, 참 착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사려 깊은 사람이기도 한 것 같고요. 직업으로 말하자면 대학교수이고요. 지방에서 내외가 같은 대학에 있습니다.

개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아내의 걱정에 남편이 동물병원에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누구한테도 맡길 수 없어. 내 애들인데 내가 돌봐야지!’라고 하더라는 아들의 말에 ‘그랬겠다.

아기가 무척 개를 사랑하니까’ 하고 말했지만, 그는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서 몇 번이고 ‘나는 개팔자도 안 돼’ 그랬습니다. 개가 없었다면 하는 생각에 이어 개가 미웠겠지요.”

그분의 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무릇 우리 삶에 떠도는 개 이야기가 실은 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랑이야기’의 변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 인마,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네가 문제야. 나이 칠십을 반고개를 넘기면서도 아직 그렇게 철이 나지 않았니?’ 하고 친구들이 떠들어댔지만 거기 있던 늙은이들에게 잿빛 여운이 길었습니다. 그 친구, 지난 금요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에 며느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지적대로 개 이야기는 결국 사람 이야기입니다. 개 때문에 사람이 뒷전으로 처지거나 개 때문에 노부모가 서운해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평소 얼마나 개에 의지하고 살았으면 개가 죽었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습니까? 그러나 개와 함께 살아야지 개와 함께 죽으면 되겠습니까?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모든 일에 중용과 분별을 지키는 樂而不淫 哀而不傷(낙이불음 애이불상, 즐거워하되 음탕하지 말며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이라는 공자의 말씀을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개를 기르는 것은 이런 삶의 덕목을 배우고 익혀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임철순 한국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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