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우나가 고향 친구 근대의 집으로 비집고 들어온 것은 3년 전 일이다. 근대는 서울 변두리에서 DVD 대여점을 하며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우나가 방값을 줄여 볼 요량으로 그 달팽이 껍질만한 방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니 다이어리가 없으면 출연료 안 준다는 거야?”
포장마차에서 만난 여자에 눈이 팔려 다이어리를 잃어버렸다는 우나의 이야기에 근대는 혀를 찼다.

“니가 지금 여자 때문에 밥줄 잃어버릴 군번이냐?”
근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마나 예뻤으면 우나가 다이어리를 잃어버렸을까 하여 솔깃하기도 했다. 근대는 자신의 손을 가슴께로 올리며,

“이게…, 커? 그래서 뿅 간 거야?”
우나는 근대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나훈아 노래 <해변의 여인>의 실제 주인공 같은 그 여인에게 가슴이 크냐고 묻다니! DVD 대여점을 한다며 만날 야동만 보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단아청초!”
“뭐? 단아청초?”
우나는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건 속 쓰리지만 그 여인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번졌다.

에로비디오 사업에 투자를 해 보라는 박 감독의 제안에 유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출연료도 못 받고 있는데 투자라니…. 유미가 거절하지 않은 건 그랬다가 말이 길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유미가 박 감독의 오피스텔을 나서는데 중년의 사내가 유미를 가로막았다.
“새 직장을 얻었으면 연락을 했어야지. 축하한다는 말도 못 했잖아.”

축하란 말에 유미는 숨이 턱- 막혔다. 한국에서 에이즈 환자는 죽을 때 이외엔 축하를 받아선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6년 전. 모든 것은 유미 어머니가 걸린 백혈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미는 백혈병에 걸린 어머니에게 혈소판을 주기 위해 헌혈을 했는데 에이즈 감염자라는 판정이 나왔다. 두 달 전 헌혈할 때만 해도 아무 이상 없었다.

그 이후 어머니 간병을 위해 줄곧 병원에서만 있었는데 에이즈라니.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병원의 방역 시스템은 완벽했고 헌혈 과정에서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0%라 했다. 전혀 책임질 것이 없으므로 법으로 해보자던 병원 측에선 언론에 제보하지 않는 합의 조건으로 3억 원을 제시했다. 요즘은 약이 좋아 에이즈 환자도 오래 산다는 말과 함께.

유미가 그 3억 원을 원무과장의 얼굴에 뿌리지 못한 건 밀린 병원비 때문이었다. 백혈병은 환자 한 사람의 건강만을 앗아 가는 질병이 아니다. 백혈병의 높은 치료비용은 환자보다 환자의 가정을 먼저 쓰러뜨린다. 병원으로 받은 위자료 3억 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죽었다.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던 날은 유난히도 햇살이 눈부셨다. 그러나 햇살은 거기까지였다. 에이즈 환자에겐 그가 왜 에이즈에 걸렸나는 중요치 않다. 오직 손가락질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러다 바이러스가 옮을까봐 그 비난의 손가락마저 거둔다. 결국 에이즈 환자를 기다리는 건 철저한 외면이다. 그들의 가족으로부터도.

유미는 그렇게 세상에 내던져졌고 모두가 유미를 외면했을 때 그녀에게 손을 내민 유일한 사람이 박 감독이었다. 유미는 그렇게 에로비디오 배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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