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유미의 앞길을 막아 선 사람은 보건소 감찰원이다.
병은 알려야 낫는다는 속담은 에이즈 환자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에이즈 환자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자신을 철저히 숨겨야 한다.

“약은 잘 먹고 있지?”
“그게 걱정 되서 오신 거예요?”
감찰원은 유미에게 커피숍으로 가자고 했다. 보통은 서류 몇 장을 주고 끝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감찰관이 나라에서 나온 것이라며 유미에게 박스를 내밀었다.
콘돔.
유미는 송충이 한 마리가 목덜미를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한 모멸감을 느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병이나 옮기는 벌레 같은 존재. 유미는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앉아 봐! 누군 뭐 니가 보고 싶어서 온 줄 알아!”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감찰관 역시도 자신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생각하니 유미는 다시 한 번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같았다.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탑방.
유미가 이곳에 방을 얻은 건 집값이 싸서이기도 하지만 이 꼭대기에 살면 이 세상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서울의 야경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후- 하고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때 문득 유미는 자신의 손에 우나가 준 우산이 아직도 들려 있음을 깨달았다. 볼품없는 사람이 준 볼품없는 우산.

비는 진즉에 그쳐 있었으나 유미는 그 우산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릴 수 없었다. 유미는 병이 걸린 이후 처음이었다. 세상 사람으로부터 진심어린 물건을 받아 본 것은. 그리고 끌리듯 훔쳐버린 우나의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유미가 다이어리를 훔친 건 간절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자신에겐 있을 수 없는 꿈과 가족. 유미는 우나의 모습에서 그 두 가지를 보았다. 그래서 우나가 들어간 포장마차로 끌리듯 따라 들어간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 온 유미는 백에서 우나의 다이어리부터 꺼냈다. 그리고 그 다이어리를 펼치자 하얀 무엇인가가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10만 원 권 수표.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그것을 주워 뒷면을 보니 <신사복 99,000원, 영등포 로얄 양복점>이라고 문구가 적혀진 광고지였다.

유미는 피식하고 미소가 나왔다. 생각해 보니 며칠 만의 웃음이다.
다시 다이어리로 눈길을 돌리자 맨 앞장엔 한복 입은 할머니 사진이 보였다. 그 남자의 어머니 같았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잘못을 안 저질렀을 것 같은 인상. 유미는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을 흘리기 싫어 다이어리를 넘기는데 빼곡히 도장이 찍힌 달력이 보였다.
예전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일수 돈을 써 본 적 있는 유미는 그것이 일수 도장이라 생각했다.

그때 현관에 세워놓은 우산이 쓰윽-하며 넘어졌다.
아까 자신에게 우산을 준 그 남자. 유미가 버스에 오르고 창을 통해 바라 본 그 남자는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빗속에 서 있었다.

다이어리와 쓰러진 우산을 바라보고 있는 유미는 그 남자가 보고 싶어졌다.
아니, 그를 만나서 이 다이어리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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