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뒤엉켜진 두 남녀의 신음소리가 근대의 DVD 대여점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근대가 참지 못하고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데 딸랑-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동시에 근대의 손이 재빨리 움직였고 이내 야동은 프랑스 영화로 바뀌었다. 바뀐 것은 화면뿐이 아니다. 야동에 눈이 시뻘겋던 근대의 표정은 어느새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인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예쁜 여자 손님일 경우 그 표정 연기는 더욱 자연스러워진다.

“여기가 나우나 씨 댁인가요?”
미녀의 입에서 나온 나우나란 말은 문화인의 얼굴에서 미소를 앗아 갔다. 대신 그 자리에, ‘우나 그 자식이 어떻게 이런 여자를?’ 하는 의심과 시기가 어렸다.

“현식이 지금 없는데.. 아! 우나 걔 진짜 이름이 현식이거든요. 정현식.”
“정… 현식 씨요?”

정현식이란 이름을 혼잣말처럼 입 안에서 굴린 유미가 손에 들린 우산을 근대 쪽으로 내밀었다.
“이걸 좀 전해주시겠어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누구… 시라고?”
“어제 만난 사람이라면 아실 거예요”

어제 만난 사람이란 말에 근대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아! 해변의 여인! 어제 포장마차에서 만났다는!?”
자신을 가리켜 ‘해변의 여인’이라니? 유미의 입장에선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따져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다이어리를 전해주고 돌아가려는 마음이 전부였다.

 
“혹시 걔 수첩 못 봤어요? 요만해서 까만 건데.”
자신의 백에서 우나의 다이어리를 꺼내던 유미는 근대의 그 소리에 멈칫했다. 유미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이 낡아 빠진 우산을 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유미는 우나의 다이어리를 돌려주러 온 것이었으나 근대의 이야기에 유미는 꺼내려던 다이어리를 백 속으로 다시 넣은 것이다.

그때 유미의 등 뒤에서 딸랑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파마를 했는지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 쓴 우나가 세탁소에서 찾은 무대 의상을 들고 막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우나와 유미.
유미의 모습에 놀란 우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머리엔 파마 비닐을 뒤집어 쓰고 손엔 반짝이 옷을 들고 있는 꼴이라니… 우나는 차라리 울고 싶었다.

그런 우나의 모습에 유미는 자신도 모르게 싱긋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미소로 인사를 대신한 유미가 간단한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 문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잠깐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우나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유미를 불렀다. 그 소리에 유미가 고개를 돌려 돌아보는데 우나가 들고 있던 와이셔츠에 자신이 입술이 스쳤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와이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
우나와 유미는 그 립스틱 자국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적.
그 정적을 깬 것은 어이없게도 딸꾹- 하는 우나의 딸꾹질 소리였다.

딸꾹-
번번이 이게 무슨 꼴이람! 우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런 우나를 바라보는 유미의 얼굴엔 싱긋 미소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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